밥, 김치, 그리고 엄마

미국에선 그립지 않았던 집밥이, 한국에선 매일 기다려졌습니다.

by 마인풀 라이프

집에 도착한 지 며칠, 밖에서 먹은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다. 동네 맛집이라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나름 열심히 외식했다. 처음엔 모든 게 신나고 새로웠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니, 저녁에 뭘 먹을까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집밥’이 떠오른다. 별거 없다. 밥에 반찬 몇 가지. 그런데 요즘엔 나가서 먹는 것보다, 이렇게 단출한 집밥이 훨씬 더 좋다.


솔직히 미국에 있을 땐 집밥이 그립진 않았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특별한 인상으로 남아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 시절엔 그저 당연하게 느껴졌던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왠지 모르게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 너무 좋았다. 그저 심플한 잡곡밥에 반찬 몇 가지일 뿐인데, 그런 소박한 한 끼가 이토록 맛있고 편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미국에서는 “오늘 뭐 먹지?”부터가 일이었다. 고민하고, 준비하고, 때로는 귀찮아서 대충 때우고. 그런데 지금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걸 먹으면 된다. 앞에 차려진 밥을 먹는 것, 그 자체가 축복처럼 느껴진다.


아기도 엄마가 다 챙겨주시니, 나는 그저 내 밥만 잘 먹으면 된다. 이건 정말 나에겐 ‘럭셔리’다. 아기를 낳은 후엔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 날도 많았고, 결국 저녁을 건너뛰고 잠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제대로 된 한 끼를 매일매일 먹고 있다. 밥이 맛있어서, 심지어는 두 그릇 먹은 날도 있었다. 밥에 김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이다. (혹시 이건 쿠쿠의 힘인가? 하하.)


엄마한테 말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그 ‘챙겨주는 마음’이 이제는 너무 잘 느껴진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왜 그렇게 나를 챙기던 건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처럼, 진심으로 자기가 원해서, 자식에게 마음을 쏟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건 정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관계다. 예전엔 엄마가 밥을 해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그게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떤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걸. 밥을 챙긴다는 건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는 걸. 매 끼니를 준비하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드리는 ‘공헌’이다. 그걸 매일, 매달, 몇 년이고 해온다는 건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헌신이다.


엄마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밥을 차려주고, 자신이 하는 일을 대단하다 여기지도 않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엄마의 행동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 침묵이 더 큰 전달력일지도 모른다.


아기를 키우며, 엄마를 다시 보게 된다. 아기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엄마를 이렇게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엔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배운다. 한국의 ‘끈적끈적한 정’. 외국을 떠나기 전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냥 냅두지’, ‘그냥 신경 꺼주지’ 싶었지만, 지금은 그 정이 너무나도 스페셜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것,그건 정말 큰 행운이다.


나도 우리 아가가 이 따뜻하고 끈끈한 한국의 정을 조금은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밥 한 끼에 담긴 마음을, 사랑을, 언젠가 그 아이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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