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전체를 이용하는 직업군
심리치료라는 분야에 몸 담으면서, ‘나의 직업은 운동선수였구나’ 생각될 때가 많다. 나의 몸이 곧 나의 작업인 분야에 몸을 담고 있음을 늘 느낀다.
심리치료는 차가운 머리 그리고 따뜻한 가슴으로만 하는 일인 줄 알았다.
20대 시절, 과외나 봉사활동들로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져 줄 때에 나는 상담이란 직업이 가슴으로 하는 일, 그리고 머리로 공부하고 정리하고 제어하며 조절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30대를 거쳐 40대로 들어선 나는 이제 심리치료/상담이란 직업이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내어주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심리치료라는 작업은 [내 몸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알아차린다.
상담에 들어가기 직전, 내 몸의 모든 컨디션이 중요하다.
내 가슴(마음) 속 파도가 잔잔한지, 폭풍인지, 혹은 아무런 바람도 미동도 전혀 없는 상태인지에 따라 뒤이어 펼쳐질 아동상담 현장의 공기가 달라진다. 내 몸의 에너지가 나의 마음과 나의 두뇌회전에 영향을 미친다. 머리-가슴-배(몸)가 한 몸이다. 어느 것 하나 나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늘 나의 마음 상태를 체크해야 하는 직업.
한 때는 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몸과 마음을 위한 작업들이 나 자신을 관리해주니 내 삶에 1+1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아 ‘나 잠시 방황 좀 실컷 하게 해 줘’라고 할 때는 마음이 조급해져 걱정이 두배로 들기도 했다.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이 몸이 만날 아이와의 작업까지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라 에너지를 내야 하는 특수한 어느 날들엔 마음이 버겁기도 했다. 나의 삶이 언제나 평화로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 마음에 파도가 칠 때, 우리 상담사들은 얼른 상담을 받거나 자가 치유를 시작해야 하는 일정이 펼쳐진다. 잠시 이런 마음을 급하게 가다듬고 상담에 들어갈 수는 있다. 이마저도 훈련을 받은 상담사이니까. 그러나, 열심히 마음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상담에 들어가 보면 안다, 몸과 마음이 제 일을 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것을. 큰 힘을 내어 작업을 하게 된다. 부드럽고 유유한 시간이 쉬이 일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한 방에 알아차린다.
상담사라는 이 어른이 자신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상태인지, 이 어른이 자신의 감정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지 아닌지. 물론 그들 스스로는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분석하지는 못한다. 다만, 상담실에서 아이의 반응의 모습이 자유롭지 못하다. 상담에 온전히 마음을 맡기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문제는, 다음번 상담이다.
아이들은 상담실에 오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부모나 학교 선생님들의 제안에 따라 상담실을 오게 되어 있으니 무조건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느냐고? 전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거짓이 아니라 정말 아프기도 하다. 원하지 않는 활동을 하려고 할 때 우리의 몸은 저 깊은 곳의 욕구에 맞춰 세팅되니까. 무의식적으로) 상담시간을 거부하게 되기도 하고, 상담실에 들어와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만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런 순간마저도 심리치료에 넣게 된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타나는 아이들의 감정과 몸의 언어를 인지시키고 반영해주는 작업을 해나간다. 아이들의 심리적 역동을 파악하고 처리해야 하는 이 순간이 의미가 있으면서도 긴장되는 순간인 이유는, 오늘 상담을 마치고 다음 상담 시간에 아이가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늘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담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최선을 다해 깊이 아이의 감정과 기억을 치유해내려 노력하게 만든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한계선은 언제나 인간의 삶에 “진짜”를 행동하게 해주는 마법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예정되지 않은 마지막은, 별로다.
나의 머리-가슴-몸통, 이 셋의 조화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래서 늘 나의 몸을 체크하게 된다. 심리치료/상담도 늘 이 세 가지를 연결해서 열어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나는 나의 몸을 통해 나를 수련하고 수행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 직업이 감사하기도 하고 이 직업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부담이 되는데도 계속 이 직업을 유지하는 이유는?
‘천직이라서’라고 이제는 말하게 된다. 몇 번 그만두려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곧내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기를 두어 번 겪은 후, 그냥 소명이구나 생각했다. 천직이라서, 소명이라서, 상담과 관련된 모든 공부와 수행이 쉽진 않아도 즐겁기는 하다.
사실, 어려움이 없는 직업은 어디에도 없지.
내 몸 자체가 내 직업의 본체인 이 직업이 어려워져 깊은 호흡이 이어질 때면 나는 늘 운동선수들을 생각한다. 다리를 다치고 팔을 다쳐서 평생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의 깊이만큼 증오했을(?) 그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순간을 걱정하는 그들을 떠올린다. 그들보다야 낫지 않나, 그저 몸과 마음의 감기가 내게 올 때만 잘 다루면 그만인 이 직업이 무어 그리 큰 부담이라고 이 호들갑을 떠나 싶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도 된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운동선수들을 좋아한다.
다시 태어나면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가지던 마음이기도 하고, 나 자신의 발전을 발견하는 순간에 희열을 느끼는 종이라서. 발전, 자신이 갖지 못하던 상태를 가지게 되는 그 과정. 운동만큼 그 제한선이 분명히 보이고, 그 제한선을 극복한 순간의 모습도 분명히 보이는 영역이 있을까. 그래서 운동을 좋아했나 보다. 너무도 확실하게 보이는 극기의 순간,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
작은 무엇 하나라도 나아지고 있는, 발전하는 나를 보아야 안식이 느껴지는 젊은이.
그러던 내가, 심리치료를 공부하면서 ‘가만히 이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엄청난 발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목표지향적인 사고가 가져오는 스트레스와 몸의 기능의 저하를 생체 심리학적 지식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험하면서 더욱 평화로워졌다. 이러하니,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배우면 늘 적용하려는 좋은 습관을 등에 업고 사는 나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관한 이 공부와의 만남을 감사한다.
내가 배우는 모든 공부가 우선은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었던 어른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어른들과 함께 ‘몸과 마음의 평화로운 삶’를 위한 방법들을 공부하고 나누면서, 나 자신이 엄청난 혜택을 제공받고 있다고 느낀다.
나도 한 때 아이였고,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부모이며, 내 안에는 아직도 내가 만나지 못한 어린 시절의 내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머리, 가슴, 배(몸)를 늘 생각하고 보호하고 치유하게 하는 직업.
부담스럽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이 직업을 사랑함을 넘어 거 뼛속 깊이 감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직장에서 보낸 시간으로 대신 얻은 것이 그저 금전적 자원뿐이기만 한 그 직장에서 평생의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고 고민하기 시작한 20대 후반. 그때가 신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타인을 향한 일을 하면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많은 이 직업, 나를 위한 작업이 결국 타인에게 건네줄 것도 되는 이 직업.
운동을 좋아하는 내가, 수행과 극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런 내가 찾아낸 최적의 직업. 소명을 찾고 싶다는 생각 아래 던진 오랜 질문과 목적이 결국 내게 답을 찾아 준 것이다.
운동선수로 사는 이 삶. 진심으로 격하게 사랑한다.
© jeffreyflin,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