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낭비하는 것들에 직면] 20일간 글쓰기 모임
미션:
(전략)
"인생을 낭비하는 것들이 있나요?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인데 끊지 못하는 것들이 있나요? 목표도 없이 시간을 의미 없이 낭비하는 것들이 혹시 있나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어요? 저는 제 인생이 썩어간다는 자괴감에 빠져요. 내 인생의 소중한 1분, 1분이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이런 자책감에 빠져요. 그럼에도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편이죠. 하지만 적어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니, 인생은 적어도 개선 될 가능성이 있겠죠? 망가진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 고통스러운 모습, 어두운 모습을 인정하면 밝은 곳으로 나아갈 용기도 생기겠죠?"
(중략)
"영상을 하나 준비했어요. 조던 피터슨 교수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내용의 영상이죠. 오늘 미션을 읽고, 해당 영상을 본 후,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현재, 여러분의 행동들을 적어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어두운 면에서 탈출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씁니다."
"그 사실을 문우에게 고백하고 서로 격려해주고 비결이 있다면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공대생의 심야 서재, 이석현 글-
나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나의 시간이 흘러가는 모양새에 대한 느낌.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보단, 시간이 부족해 아쉬워한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시간 안배에 열과 성을 쏟고 있다. 일해야 하고, 쉬어야 하고, 놀아야 하고, 즐겨야 하니까. 하루에 그 모두를 적절히 넣어야 하니까. 젊었으면 수면 시간을 꺼내 다른데 나눠주고 했는데. 지금은 안돼! 수면부족은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작동 유무의 문제가 되어 버렸으니까. 나는 급격한 기계적 둔화기에 서 있다 하하. 흑흑흑... 더 확보해야 하는 것이 수면이다. 잠을 줄일 순 없다.
시간이 왜 부족한가?
새로운 영역으로 몸을 옮기고 공부하는 중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호기심이 줄어들지 않는다. 20대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단지 그때와 다른 점은 그때는 모두 나만의 시간이었고 지금은 누군가와 나눠 써야 하는 나의 시간이라는 점? 삶을 알아가고 나서 다시 선택한 공부의 재미도 다르다. 나이 들면 공부가 더 재밌다는 것을, 하고 싶은 공부는 밤새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법이라던 어르신들의 증언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그런데, 그 재미를 채울 속도가 시간 전에서 밀리고 있다.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고, 쏟아지는 과제와 논문들까지 밀려간다. 쌓여가는 책의 목록과 늘어가는 데이터 문서들의 개수를 볼 때마다 슬퍼진다.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낭비될 시간조차 여유롭게 주어지지 않는 게 더 서글프다. 아이랑 노는 시간은 절대 미룰 수 없는 스케줄이고...
영상 속 피터슨 교수는 시간의 낭비를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를 보는 행위 등, 시간 죽이기를 하며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의 알아차림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떠도는 행위라고.
"A mindless way of doing things."
깨어있지 못한 채(mindless) 행하는 일들. 마인드풀(mindful) 하지 못한 자세.
시간의 낭비라...
몇 년 전 갑자기 내게 한 번 크게 다녀간 단어다. 낭비. 후회. 시간의 낭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아온지라 참 당황했었다. 그것도 이미 지난 일에 대한 것이라 더욱 휘청. 다시 어쩌지 못하는 '과거'형을 날더러 어쩌라고. 도마 위에 오른 재료는 바로 나의 20대의 시간들이었다. 한 번도 낭비라고 꼬리표 붙인 적이 없었다. 30대에 들어설 때에도, 20대를 만족한다고 결론 내린 뒤였으니. 그런데 그 20대가 후회된 것이다. 해결하지 못한 인생의 질문에 답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쓴 순간들이 채워진 나의 20대였다. 그것이 그렇게 뼈아프게 후회스러울 줄이야. 친구들과 추억이 모자란 것도, 학교 생활이 재미없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나는 하나의 문제에 매달린 나의 밤들과 새벽들의 시간들이 아쉬워지기 시작한 걸까. 정신을 못 차렸었다.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문제였다고 생각했고, 그만큼의 시간을 쏟아주었기 때문에 '지금'을 잘 살아내고 있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해석의 방향이 뜬금없는 칼날을 세운 것이다.
20대 전체를 '날려버렸다'라고 멍청하게 해석됐을 때의 그 고통이란. 한 질문에 꽂혀 정신을 잃는 동안 내가 놓친 다른 기회들과 경험들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토로하면서 나를 두들겨댔다. 어쩔 거냐고. 그때만이 할 수 있는 시도들, 그때만이 가져올 수 있는 다른 반응들, 20대의 나 만이 가져올 수 있었을 나의 반응과 결과들. 그것들을 어쩔 거냐고. 괜한 질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나머지 너는 그 다른 길들을 가보지도 못한 것 아니냐고. 내가 갔을 다른 길, 그 길들이 몸서리치게 궁금해서 괴로웠다. 이 무슨 때 지난 미련인가. 어떤 모습이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가지는 미련이라니...
후회라는 것, 미련이라는 것의 고통은 생각한'대로' 쓰라렸다. 다시 돌릴 수 없는 실수라는 것이 '시간'이라면, 나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한참의 화풀이를 받아주고 일어났다. 내가 할 일은 지금부터 다시 잘하는 것뿐이었다. 나중의 과거가 될 지금들을 제대로 사는 수밖에. 그래서 그 뒤로 마인드풀(Mindful)하게 살고 있다. 나의 30대 후반만이, 나의 40대만이 할 수 있는 경험, 나의 '지금'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느끼려 최선을 다한다. 20대, 한 가지 질문에 꽂혀 시간을 보낸 경험, 그 경험도 그때에는 그것이 답이었음을, 지금은 다시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 갑작스러운 고통이 또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준 셈이다. 순간순간을 열심히 느끼며 살라는 교훈을 그렇게 공격적으로 안겨준 게 좀 흠이랄까. 좋은 해석과 좋은 교훈은 좋은 기분을 갖게 해 준다. 물론 진짜 해석, 제대로 이해한 교훈이어야 하는 것이 숙제이긴 하지만.
시간의 유일성에 대하여.
시간의 낭비와 연결되는 시간의 유한성 개념. 지난날 내 모든 '열심'의 자극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한성이 아니라 '유일성'에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가 아니면 아닌 그것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지금들에 집중한다. 유일무이한 '지금'.
시간의 길이, 짧은 시간이니 무엇을 하라는 것, 이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중요하다. 한 달을, 일주일을, 오늘을, 잘 느꼈느냐가 중요해졌다. 계획의 완성 혹은 완주도 중요하지만, 계획을 이루는 하루하루들도 즐거웠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마인드풀(깨어있음)하게 살려 노력한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늘 확인하고 지금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느끼려 노력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노력.
1.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늘 자각하기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체크한다.
2.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늘 질문한다.
2. 나의 계획과 행동을 이행할 나의 심신의 안녕을 늘 체크한다: 나의 몸과 마음이 하지 못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내가 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조던 피터슨의 영상 이야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계산해 주어 자각심을 일으켜주려는 교수의 영상이다.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하루의 몇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지.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낭비한 느낌이 된다는 대학생은 10%, 하루에 6시간 정도를 낭비하는 것 같다고 대답한 대학생들이 80%. 그 시간을 토대로 계산을 한다. 일주일 42시간. 돈으로 계산을 한다. (인간은 돈으로 환산된 가치를 잘 상상하니까. 슬프지만 탁월한 방법...). 일반 회사원의 주당 40시간 근무시간과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자 이제 계산이 들어간다. 최저 임금을 받는 대학생들의 시급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20살 때 하는 행위에 대한 가치는 20년 뒤, 강력한 복리 가치로 계산되어야 한다는 것. 시간당 5만 원. 물론 피터슨 교수도 아주 적게 잡힌 숫자라고 언급하였다. 일주일 200만 원, 1년이면 1억이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1년에 1억씩 낭비하지 않고 산다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더 좋아질 거 같은가요? 이 상태로 20살부터 60살까지, 40년을 산다면 40억입니다. 당신은 이미 부자입니다. 당신만 그것을 모를 뿐이죠."
-여기서 잠깐 내 생각 덧붙이기-
20년 뒤 한 직장에서 받는 연봉 1억으로 계산해 버릴 청년들이 있을까 봐 잠시 더 보태어 계산해 주고 싶다. 젊어서 얻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것은 비단 직장 내 용역 제공에 대한 대가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젊어서 쌓는 그 모든 기술들은 앞으로 평생의 좋은 친구를 만나는 데, 자신을 멋있어할 '괜찮은' 자신이 되어가는데, 자신의 심신의 안녕을 도와주는 취미 활동(혹은 생산적 활동)을 이어주는데, 자신의 시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을 도와줄 많은 '생각과 성찰'을 하게 해 준다. 그 생각과 성찰은 기술들을 얻으려 실시한 '경험'들을 통해서만 얻게 될 것이다. 기회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경험'들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적어도 35세쯤 넘긴 사회인이라면 쉽게 알아차리는 대목). 그러므로 젊어서 낭비하지 않은 시간 동안 배운 기술로 돌려받는 것의 결과를 단순히 직장에서 받는 연봉, 용역의 가치로만 평가하는 단순함을 넘어서자.
우리의 삶은 사실 주당 168시간. 젊어 잘 쌓은 생각과 행동의 기술은 그냥 버려지는 것 같은 '수면'시간에 조차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질 좋은 수면은 질 좋은 내일(24시간)의 시작이다. 즉, 우리의 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굳이 돈으로 또 따지자면 보험료도 내려가고 실제 병원비도 내려가며, 혹여 병원 치료를 받게 된다면 그 시간 동안 날릴 다른 행위의 기회비용까지도 계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나는 치료를 받는 행위조차도 생각과 행동의 기술을 쌓는 또 다른 '경험'으로 계산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