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 특징 #1> 정보 처리의 깊이
우리가 그토록 없애고 싶어 했던 예민함은, 사실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에 가깝습니다.
불안장애나 우울증처럼 치료의 대상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위해 고쳐야 할 결점도 아니에요. 타고난 신경회로의 특성으로 인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남들과 조금 다른 것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는 유독 발이 크고, 소화력이 약하고, 피부색이 하얀 것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모든 자극을 더 세밀하게 느끼며 깊게 처리하는 기능을 타고난 사람들이에요.
그동안의 삶이 유독 더 힘들거나, 때로는 더 눈부시게 빛나던 것도, 남들보다 세상을 더 섬세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 거지?' 하며 스스로를 책망해 왔다면, 내가 가진 예민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건지도 몰라요. 예민한 기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민함 극복의 첫 번째 과정은,
‘예민함'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죠.
우리는 대체 남들과 어떻게 다른 걸까요?
HSP 개념을 처음 제시한 아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HSP는 Sensory-Processing Sensitivity (감각 처리 민감성)라고 부르는 기질적 특성을 남들보다 강하게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외부 자극과 내적 경험을 처리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훨씬 섬세하며, HSP만의 특징적인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해요.
예민한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특징적인 양상 중 하나는, 모든 정보를 깊게 처리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상황에서도 더 생각이 많고 뭐든 단순하게 넘어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상대의 말 한마디를 들어도 그 말의 의도나 맥락, 숨어 있는 감정까지 함께 읽어내고, 경험한 것들을 더 오래 곱씹으며 기억합니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 동료의 차가웠던 표정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예를 들어, 예민한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많을 거예요.
'걔 표정이 왜 안 좋았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까 거기서 그렇게 말하지 말걸..'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선택이 어렵지?'
'남들은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건데.. 난 왜 사소한 것도 쉽게 못 넘기는 거지?'
'나도 좀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남들보다 생각이 많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서 신중히 계산하기 때문에 사소한 결정도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결정장애'도 심하고, 결정한 뒤에도 '이렇게 하면 어땠을까?' 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생각이 많은 만큼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심하고, 신속한 결정과 실행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고난 신중함과 꼼꼼함 덕분에 미리 대비하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남들보다 실수가 적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도 적다는 장점도 있죠.
생각이 깊다는 특성은,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많고, 인간관계나 경험을 단순하게 소비하지 않는 진중함도 보이지만, 뭐든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성격이 마음 건강의 측면에선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에너지 소모가 커서 정작 필요한 순간에 에너지가 부족할 때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거나,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각자가 가진 예민함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모든 정보를 깊이 처리하는' 이 특성이 나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예민함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천천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것에 맞는 마음 관리법들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예민함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듬는지에 따라, 남들에겐 없는 섬세한 재능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민함이라는 양날의 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예민함부터 제대로 알아보기로 해요.
다음 글에서도, 내 예민함을 파악하기 위한 'HSP의 특징적인 모습들' 이어서 설명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