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첨삭하다가 나를 첨삭당했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다.
처음엔 그게 네이버 지식인을 하면서 생긴 줄 알았다.
누군가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채택되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더 전이다. 피시방 야간 알바할 때도 그랬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주곤 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시절부터다. 컴퓨터를 조금 안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집에 불려가 고쳐주고, 칭찬을 들으며 좋아했다.
이직 관련 멘토링을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 연장선이었다.
회사 동료들의 이력서를 봐주고, 면접 조언을 해주고, 방향을 잡아줬다.
연차가 많으니 내가 면접을 본 적도, 본 사람도 많았고. 그렇게 몇몇 분들이 대기업, 준대기업에 척척 붙었다. 내 도움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걸까.
어쨌든, 그때 나는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하나 찾은 기분이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우연히 사람인 앱에서 멘토링 제도를 봤다.
목소리로 간단한 조언을 해주고, 소정의 포인트를 받는 구조였다. 가볍게 시작했다.
10회를 넘기고, 별점은 늘 5점이었다. '정말 도움이 됐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 조금 다른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엔 평소처럼 이력서 멘토링인 줄 알았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진 루틴이었다. 쓱 훑고, 몇 군데 짚고, 방향을 잡아주는 일.
면접관들이 어떤 걸 보는지, 어떤 표현이 눈에 띄는지, 어떤 구조가 설득력 있는지.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내 입에 익어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이력서를 펼쳐보는 순간, 당황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문장도 깔끔했고, 흐름도 좋았다.
내 안에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에 뭘 더 보탤 수 있지?' '괜히 조언한다며 이상한 소리 하는 건 아닐까?'
익숙했던 멘토링의 리듬이 깨졌다.
당황한 채 하루를 보냈다.
무슨 말을 해줘야 도움이 될지 고민하면서, 이력서를 계속 들여다봤다.
3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괜히 말 잘못했다가 오히려 혼란만 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트집을 잡자면 분명 잡을 수 있었다. 경력을 좀더 꾸며서 표현하거나, 문장의 완성도나 구조에서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세한 보완일 뿐이었다. 이력서가 떨어질 만큼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충분히 합격권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고민은, 이 이력서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채용 구조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혹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글로벌 기업 같은 곳에서는 이런 이력서도 통과되지 않는 걸까? 내 판단이 너무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멘토링 시작 전까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멘토링이 시작됐다. 노트북 앞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골랐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입술을 몇 번이나 다물었다. 괜히 실망시키는 건 아닐까, 도움이 안 되면 어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이력서 꽤 괜찮으세요. 솔직히 왜 떨어졌는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면접관이라면 부를 것 같은데요?"
"어떤 곳에 지원 하셨던 걸까요?"
그러자 상대방이 말했다.
지금 보여준 건, 떨어졌던 이력서가 아니라 각종 유튜브나 자료를 참고해서 갱신한 버전이라고. 떨어졌던 이력서는 지금봐도 엉망이라고.
아—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도 긴장이 풀리자 더 열정적으로 말하게 됐다.
지금 이력서에서 추가하면 좋을 부분, 각 회사에 맞춰 어떻게 표현을 바꾸면 좋은지,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까지. 쏟아냈다. 정말, 다 쏟아냈다.
그분은 고맙다고 했다. 멘토링은 잘 마무리됐다.
그리고 멘토링 창을 닫은 그 순간, 잠깐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딱히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했을까.
단순히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만족감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단, 오랜만에 누군가의 진심에 내 진심을 꺼내 썼다는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짧은 30분이 나에게는 꽤 많은 감정을 건드렸다.
그날 이후, 가끔 생각한다. 이 멘토링은 누구를 위한 시간이었을까?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익숙해진 일이라고 쉽게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처음처럼 진심을 다해 임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 멘토링, 내가 더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