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해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도덕과 유혹 사이, 그 1분의 기억

by 잡생각 수집가

나는 15년 전, 지식인에서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보안’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해킹당했어요’라는 질문에 답변을 달고, 오픈백과를 집필하고, 악성코드를 분석하며 매일같이 자판을 두드렸다.

답글이 채택되고, 감사 인사를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꽤 괜찮은 전문가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그때의 나는 마치, 인터넷 너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슈퍼히어로라도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해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시절 유행하던 메신저, 네이트온을 통해.


“이 백신을 다 뚫은 악성코드, 네가 분석할 수 있겠어?”

그가 보낸 파일을 열고, 분석에 들어갔다. 악성 행위가 감지되는 위치를 찾아냈고, 백신을 어떻게 우회하는지도 알아냈다. 내가 분석한 내용을 정리해 전달하자, 그는 곧장 말했다.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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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 일하면, 지금처럼 정직하게 일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고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분 정도는 망설였던 것 같다.

그 1분이 너무 강렬했기에,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외국에 나가 살아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고,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다.

선택이 아니라 회피에 가까운 거절이었달까.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보안 일을 하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내가 가진 정보와 권한을 노리고 있고, 가끔은 은밀한 제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망설이지 않는다.

내 연봉의 두 배를 제시한다 해도, 선을 넘을 생각은 없다. 잃을 게 너무 많다. 가족, 직업, 그리고 내가 쌓아온 이름까지.

그런데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도덕적으로 성숙해졌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걸까?
아니면, 잃을 게 많아져서 조심스러워진 걸까?


정답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때, 그 제안 앞에서 1분을 망설였던 나는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살아 있다. 그저, 이제는 그 1분을 넘어서 선택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는 것.


도덕이란 건 어쩌면, 그렇게 자라나는 것 아닐까?

가끔은 지금도 상상해본다.

그때 내가 정말 돈이 없었다면, 혹은 먹고사는 게 너무 막막했다면,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나는 도덕적인 사람일까, 아니면 현실에 맞춰 신중해진 사람일까.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유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 유혹에 흔들릴 정도로 내가 약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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