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경력은 무기일까, 가격표일까

나이가 들수록 ‘성장’보다 ‘비용’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by 잡생각 수집가

한 회사 면접에서,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경력이 많으시네요.”

처음엔 기뻤다. 내 경험이 통했다는 뜻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은 이후 결과는 조용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선긋기였다는 걸.



어느 면접에서는 이런 질문도 받았다.

“혹시… 나이가 더 적은 팀장 밑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경험 많고, 문제없다고. 실제로도 그랬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나도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질문 자체가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조직 안에서 '애매한 연차'라는 뜻. 팀장을 시키자니 싫다 하고, 팀원으로 두자니 눈치 보이는 사람.



나는 실무가 좋다. 팀장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회의를 이끌고, 조직을 리딩하는 일보다는 내가 손으로 만들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일이 더 즐거웠다.

흔히 말하는 '책임지기 싫어서 실무만 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책임질 줄 안다. 다만 그보다 더 오래 하고 싶은 일,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실무였다.


그런데 이 말이 위험해졌다.


조직 안의 암묵적인 룰 때문이다. 실무는 젊은 사람의 몫, 연차가 높아지면 관리직.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더욱 말이다.

그 룰에 맞지 않으면, 나는 점점 애매한 사람이 된다.


IT 보안팀은 돈을 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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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회사에서 보안은 ‘비용’이다. 매출이 아닌 리스크 회피용 투자. 그래서 최소한의 인력만 남긴다.

이때 고연차, 고비용의 인력은 가장 먼저 부담이 된다.


규제만 맞추면 된다면, 굳이 고경력자를 쓸 이유가 없다.

나는 점점 ‘너무 비싼 사람’이 된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조직엔 불필요한 사람.
미래를 만들어야만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


예전엔 이력서가 길수록 좋다고 믿었다.

군 시절 전산병이었던 것부터 PC방 알바까지, 뭐든 끌어다 적었다.

그게 내 정체성의 증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줄인다.

지운다.

감춘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가 때로는 감점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경력은 분명 나를 성장시켰다. 동시에 나에게 가격표를 붙였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는 내 경력을 '가성비'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일하고 싶다. 싸게 쓰일 사람 말고, 제값 하는 사람으로.

그래서 나는 문득 묻게 된다.


당신에게 '경력'은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을 지켜주는 무기인가요, 아니면 점점 희미해지는 가격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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