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가 사라진 시대, 부드럽게 일하는 기술
“이거 다시 하셔야겠어요.”
회의 중, 부장이 조심스럽게 내 쪽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톤은 부드러웠고, 표정도 상냥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같은 말을 메신저로 받았다.
말은 똑같은데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표정도, 말투도 사라진 텍스트는, 마치 '지시'처럼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말에는 표정이 있다. 텍스트엔 없다.
우리는 평소에 말만 하는 게 아니다.
손짓, 눈빛, 말꼬리의 길이, 목소리 톤, 심지어 말 사이의 침묵까지…
이 모든 게 함께 전달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웃으며 말한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눈웃음, 손 제스처, 말꼬리의 흐름. 전부가 함께 있어서 기분 나쁘지 않다.
그런데 같은 말을 메신저로 받으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느낌표도 없고, 이모티콘도 없다면... 그건 단지 부정의 문장이다.
기분이 상한다.
재택근무가 말투를 바꿔놓았다
코로나 시절, 모두가 재택을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엔 편했다. 편한 옷차림, 조용한 공간, 출근길도 없는 하루.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서로 사이좋던 동료들이 메신저로 일하다가 다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지?” 싶다가도, 나 역시 누군가의 메시지에 욱했다.
어느 날, 동료가 보낸 메신저 한 줄이 기억난다.
“이건 왜 이렇게 한 거예요?”
질문이었다. 하지만 따지는 말투처럼 느껴졌다.
‘말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말투가 지워진 말’이 문제였다.
말투를 리디자인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회사 사람들의 말투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특히 메신저나 메일에서.
눈에 띈 건, 말 앞에 붙는 작은 완충어들이었다.
‘혹시’, ‘바쁘신줄알지만’, ‘번거로우시겠지만’, ‘~같긴 한데요’, ‘괜찮으시면’…
이 단어들이 앞에 붙기만 해도, 말의 온도가 확 달라졌다.
“수정해주세요.”
→ “혹시 이 부분, 조금만 다르게 수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거 빠졌네요.”
→ “제가 놓친 건가 싶었는데, 혹시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직 안 됐어요?”
→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요. 혹시 어느 정도일까요?”
“다시 해주세요.”
→ “번거로우시겠지만, 이 부분 다시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그건 아닌데요.”
→ “말씀하신 방향도 고려하면서, 이렇게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건 단순한 ‘예의 차리기’가 아니다.
상대의 방어 본능을 건드리지 않는 기술이다.
말은 바꾸지 않고, 느낌만 바꾸는 방식.
특히 메신저처럼 ‘표정이 사라진 공간’에선, 이게 더 중요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의에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메신저에선 자꾸 날카로워지는 나.
바쁘다는 이유로, 정직하다는 핑계로
누군가의 하루를 상하게 한 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앞꾸밈 말투는 ‘비굴함’이 아니라 ‘배려’다.
그리고 일할수록, 그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진다.
말은 흘러가지만, 말투는 마음에 남는다.
오늘 내가 쓴 그 말, 그 말투 하나가
누군가의 기분을 흔들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