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가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시대
초등학생 때, 나는 인사를 참 잘하는 아이였다.
그건 누가 시켜서 한 것도, 누가 가르쳐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길에서 동네 어르신을 보면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동네 슈퍼 아주머니는 가끔 사탕을 쥐어주었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역시 인사성이 밝아서 다들 예뻐하신다”며 기특해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처음 배운 ‘세상과의 연결’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을 거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
그리하여 좋은 반응을 받는 것.
그 단순한 순환이 어린 나를 조금 더 환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꽤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점점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된 쪽에 더 가깝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해본 적이 있다.
근데 그 사람은 고개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의 침묵과 무반응.
그게 참 묘하게 마음을 움츠리게 만든다.
‘어, 내가 뭔가 민망한 짓을 한 걸까?’
말을 걸지 않았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텐데,
괜히 나 혼자 부끄러워진다.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고 나니,
나는 인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상대의 표정을 읽고, 가능성을 가늠하고,
그때그때 목례로 축소하거나, 아예 스쳐 지나가거나.
인사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작은 도전이 되었다.
이게 내 성격 탓일까, 아니면 시대의 분위기일까.
요즘은 다들 말이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본다.
사무실 복도에서도 ‘무표정’이 디폴트다.
다들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고,
사적인 감정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우리 모두가 먼저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말조차 걸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밝게 인사한다.
회의실에서, 복도에서, 심지어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좋은 아침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공기가 바뀐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참 부럽다.
그건 그냥 매너가 아니라, 용기라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은 날이든 아니든,
반응이 돌아오든 말든,
먼저 말을 건다는 건 결국 자기 마음을 건네는 일이니까.
나는 아직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 마음이 위축된 것뿐이지,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짧은 침묵을 덜 두려워할 수 있다면,
나도 언젠가는 다시, 어린 시절처럼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를 꺼낼 수 있을까?
오늘은 여전히 목례였지만,
내일은 조금 더 말을 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