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감정의 기술이 필요한 순간들
어릴 때는 그런 사람이 멋있었다.
말이 거칠고 성격이 삐뚤어져도, 실력 하나로 버티는 괴짜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는 늘 그런 인물이 중심이었다.
윗사람이 뭐라 해도 결국은 “저 사람 없으면 회사 안 돌아간다”로 끝나는,
그런 존재감 있는 캐릭터들 말이다.
나도 한때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다.
묵묵히 일 잘하고, 결과로 증명하는 사람.
불합리한 말에는 “그건 틀렸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실력만 있다면 언젠가는 다 인정받을 거라고 믿었다.
회사라는 곳도 결국 효율과 성과의 집합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조직에서의 ‘위치’가 바뀌고 나니
그 믿음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니어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누가 봐도 평균 이상, 각자의 분야에서는 다들 능력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는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누가 말을 더 잘하느냐’가 더 중요해 보였다.
회의실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내용은 평범하다. 특별히 뾰족하지도 않다.
그런데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논리도 탄탄하고, 근거도 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싸해진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목소리 톤과 말투가 문제였다.
“기분이 상한다”는 이유로,
그 말의 옳고 그름보다 전달 방식이 평가받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는 실력의 싸움이 아니라, 감정의 기술 싸움이라는 걸.
17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아주 서서히 느껴온 사실이다.
시니어가 된다는 건,
이제 더 이상 ‘혼자 잘하는 사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뜻이다.
실력은 기본값이다.
그 위에 다른 게 있어야 한다.
그 ‘다른 것’은 뭐냐고 묻는다면,
예전엔 부정적으로 들렸던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정치력.
정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땐, 나도 거부감이 들었다.
줄 서는 일, 비위를 맞추는 일, 눈치 보는 일.
그게 다 정치 같았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건 꼭 ‘아첨’이 아니라, ‘조율’의 기술일 수도 있다는 걸.
상사가 일 잘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도,
결국 팀 전체가 살아남는 전략 중 하나라는 걸.
결국 회사는 개인의 실력보다, 관계의 합으로 굴러간다.
누가 누구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누가 누군가의 의도를 읽어주느냐가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나도 한때는 세모난 사람이었다.
윗사람이 기술적으로 틀린 말을 하면 바로 지적했다.
“저건 아니죠.”
그게 조직을 위해 옳은 일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계속 그 상태로 남았다면,
아마도 “일은 잘하지만 같이 일하기는 싫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한다.
상대가 틀린 말을 해도, 일단은 ‘왜 저 말을 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 말이 틀린 이유보다, 그 말을 하게 된 배경을 본다.
어쩌면 그게 나보다 더 중요한 ‘진짜 이유’일 수도 있으니까.
시니어가 된다는 건, 그런 균형을 배우는 시기다.
이젠 한두 가지 기술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팀의 균형, 관계의 온도, 말의 순서.
그런 것들이 실력만큼 중요해진다.
그러니 실력만으론 버틸 수 없는 시기가 온다는 말은,
어쩌면 실력 위에 감정을 얹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실력을 믿는다.
결국 일은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실력이 누군가를 밀어내는 순간,
결과적으로 나를 고립시킨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요즘은
‘내 실력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선’을 고민한다.
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듣고,
내가 틀리지 않아도 그냥 두는 법을 배운다.
그게 어쩌면
시니어로 살아남는 또 다른 능력 아닐까 싶다.
그래도, 실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실력만으로는 부족한 시기가 분명히 있다.
그 시기에는 기술보다 감정이,
결과보다 공감이 더 큰 힘을 낸다.
결국 회사는 ‘일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일하는 곳’이니까.
나는 아직도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이제는 그 실력이 관계 속에서도 작동하길 바란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버티는 게 실력일까, 변하는 게 실력일까.
어느 쪽이든, 나는 아직 그 경계 위에서 서성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