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예민해진 게 아니라, 책임의 안쪽으로 들어온 것뿐
요즘 글을 거의 못 썼다.
핑계를 대자면 바빴고, 솔직하게 말하면 여유가 없었다.
이사와 이직이 겹치면서 머릿속이 늘 한두 발짝 앞의 최악을 먼저 상상하고 있었고,
그 걱정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문장을 꺼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은 게 아니라, 걱정이 글보다 앞에 와 있었던 시간에 가까웠다.
요즘 자주 보이는 밈이 하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 목록에 ‘INFP가 부정적인 결론으로 성급히 넘어가는 속도’가 추가되는 그림.
웃자고 만든 밈인데, 이상하게 웃기지가 않는다. 너무 정확해서다.
내가 INFP라서 그런지, 요즘은 걱정이 유난히 많다.
이사 하나, 이직 하나에도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자동 재생된다.
‘혹시 사기면 어떡하지?’
‘일정이 꼬이면 가족은?’
‘이 선택이 몇 년 뒤에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오면?’
가만히 생각해보면,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다.
결론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이런 종류의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사를 가면? 부모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학교에서 반이 바뀌고, 팀이 나뉘고, 역할이 달라져도?
“아, 그렇구나. 그럼 하면 되지.”
모르면 물어보면 됐고, 실수하면 어른들이 수습해줬다.
그때의 나는 낙천적이라기보다는, 책임의 바깥에 있었다.
요즘의 걱정은 성격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자리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번 이사에서 내가 잘못 판단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간다.
사기를 당해도, 일정이 틀어져도,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줄 사람은 없다.
마지막 책임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팀 간 R&R이 조정될 때, 내가 밀리면 그 부담은 팀 전체로 넘어온다.
잡일을 떠안게 되면, 누군가는 야근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불만을 삼킨다.
그 불편함의 시작점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선택 하나가 가벼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걱정한다.
성격이 예민해져서가 아니라,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구나.’
이 말이 요즘 들어 유난히 실감난다.
자리가 바뀌면, 시야가 바뀌고, 그 시야가 감정을 바꾼다.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성격처럼 보이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은 있다.
누군가는 낙관 쪽으로, 누군가는 비관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그 기질을 증폭시키는 건 성격이 아니라 환경이고,
그 환경의 핵심에는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가 있다.
예전의 나는 걱정이 없던 사람이 아니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를 INFP 밈 하나로 설명하기엔 뭔가 억울하다.
이건 나약함이라기보다는, 책임의 무게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
누군가는 이걸 과민하다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걱정이 많아졌을까.
정말로 성격이 변해서일까, 아니면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요즘의 걱정을 나 자신만의 문제로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 걱정은 내가 잘못 살아온 증거가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자리에 서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함께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