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치솟는 환율 속 돈에 대한 생각

소비의 방어막이 얇아졌다는 감각

by 잡생각 수집가

요즘 환율 이야기로 다들 긴장해 있다.

뉴스를 켜면 숫자가 오르고,

그 숫자는 곧바로 물가와 생활비,

여행과 투자,

나아가 선택의 문제로 이어진다.


환율은 분명 중요한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문제이고,

누군가에게는 사업과 고용,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인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의 감정도 함께 예민해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득,

요즘 내가 돈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꽤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율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문제 앞에서조차

내가 돈을 바라보는 감각이

예전과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던 사람이었다.

용산에 가서 부품을 하나하나 고르고,

조합을 따지고,

직접 조립해서 쓰는 것에 묘한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돈을 아끼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나는 이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감각이었다.

조립비를 아꼈다는 사실보다,

호갱이 아니라는 증명,

돈을 똑똑하게 쓰고 있다는 자기 확신에 가까웠다.


지금도 할 수는 있다.

부품을 고르고 조립하는 법도 여전히 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 하게 됐다.

그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그 돈을 아끼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립비 몇 만 원을 아끼자고

귀찮음을 감수하는 일이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외식 기억도 비슷하다.

그 시절에는 잘 사는 집이라 해도

외식은 늘 특별한 날의 일이었다.

치킨이나 짜장면조차

아무 이유 없이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소비에는 항상 명분이 필요했다.

오늘은 뭐가 있어서,

기념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서.


돈을 쓰는 행위에는 늘 설명이 붙었고,

작은 소비에도 죄책감이 따라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비에 대한 방어막이 얇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를 사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짧아졌고,

이 정도는 괜찮지라는 말이

훨씬 쉽게 나왔다.


사치라고 부를 만큼 큰 변화는 아니다.

다만 소비를 막아주던 심리적인 장치가

예전만큼 두껍지 않다는 감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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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예전의 나는 돈을 아끼는 방식으로 나를 증명했고,

지금의 나는 돈을 덜 의식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돈의 가치가 변했다기보다는

돈을 둘러싼 내 삶의 조건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시간의 값이 달라졌고,

에너지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고,

그래서 돈이 차지하는 위치도

함께 이동했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돈을 아끼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라는 질문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돈의 가치를 다르게 느끼게 되는 건

어쩌면 이상한 변화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은 아닐까.


예전의 내가 틀렸다고도,

지금의 내가 더 나아졌다고도 말하긴 어렵다.

다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돈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환율 그래프보다 훨씬 천천히,

하지만 훨씬 깊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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