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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Oct 17. 2022

책 싫어 병

대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식이 없다니, 국어국문 전공 시험은 당연한 소리지만 사지선다형이 아니다. 다른 이공계 전공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문학에 있어서는 1+1=2와 같은 정답이 없다. 시험 문제를 잘 읽고 정답을 잘 찾는 것이 아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긴 하나의 답변을 작성해야 한다. 사는게 대학 시험과 뭐가 다를까 싶다. 정답 없는 인생에 정답 같은 것들을 써내려 가는 일.


작가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후 나는 늘 끼고 살았던 책을 열지 않았다. 취업을 한 후 책은 더 이상 가치 있는 활동이 아니었다. ‘책 싫어 병’에 걸린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떡이 나오지도 않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잘 버텨온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주변에 아무도 책을 읽지 않았다. 사무실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업무 중에 읽는 텍스트가 얼마나 많은데 책까지 읽냐?’며 저마다 한마디씩 얹고 갔다. 


‘책 싫어 병’ 무렵 합병증으로 ‘재밌다. 맛있다. 좋다. 병’에 걸렸었다. 새로 문을 연 식당을 방문한 후 친구가 거기 음식 어땠는지 물으면 학습이 덜 된 AI처럼 ‘맛있다.’외에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감독 이번 작품 어때?’라는 질문에 누구보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내가 ‘재밌었어.’라고 짧게 대답하고 마음 속으로는 ‘재밌었는데 그게 뭐였더라?’하고 두루뭉술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했다. 회의를 할 때 의견을 물어도 나는 다 좋았다. 실제로 좋지 않아도 우선 좋다고 대답하고, 한참 뒤에 좋지 않았구나 깨달았다. 왜 좋지 않은지를 바로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기에 우선 좋다고 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으니 사유가 없고 깊은 사유가 없으니 나의 체험은 늘 단조롭게 느껴졌다. 단조롭게 느껴지니 표현이 나오지 않고 표현이 나오지 않으니 의견이 없어지고 색깔을 잃어갔다. 사고의 확장이 전혀 되지 않으니 이상한 소문을 들어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지는 관심이 없고 기정사실화 시켜 받아들였다. 배움의 즐거움이나 성취의 뿌듯함, 발견의 기쁨 같은 것들이 내 삶의 원동력이란 사실을 잊게 했다.


나이만 잔뜩 먹은 애송이가 된 것 같았다. 아는 것이 없으니 알은 체만 하고, 상대의 상황이나 감정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막무가내 조언과 충고를 남발하고 나서야 ‘책 싫어 병’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채색의 기계 부품 같은 삶을 만드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시립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고 일요일마다 책을 빌렸다. 분야를 따지지 않고 재밌어 보이면 다짜고짜 집어왔다. (음양오행을 다룬 사주 관련 서적, 초등학교 때 읽었던 몽실언니, 야생초편지, 전원주택, 땅콩주택, 협소주택 관련 건설 서적 등 참 다양하게 읽었다.) 칼퇴를 하고 컨디션이 괜찮으면 도서관 구석에서 쉬지 않고 읽었다. 조금이라도 흥미가 떨어지면 덮고 다른 책을 열었다. 그렇게 ‘책 싫어 병’을 억지로 고쳐갔다.


완치가 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도 책을 읽기 싫은 시기가 찾아온다. 그래도 하루에 정해진 시간(아침 시간을 추천한다.)동안은 텍스트를 읽는다. 읽는 행위만으로도 심박수가 낮아지고, 근육 긴장을 풀어준다. 출근을 일부러 빨리하는 편인데, 빈 사무실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독서를 하면 하루의 시작이 단정한 느낌이다. 단정하게 시작하니 허둥지둥 출근하여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별로 없다.


책을 다양하게 읽어가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이겨냈다. 사보 인터뷰를 담당하고 지면에 인터뷰 기사를 싣는 것을 시작으로, 시간을 내어 다양한 의뢰인들의 편지쓰기를 도와주고, 결혼식 축사, 기관 인사말, 발간사, 업체 광고 카피, 자소서 첨삭 등 다양한 곳에 글을 썼다. 내가 쓰는 글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지금 이렇게 책도 쓰고 있지 않나?


글을 쓴다는 것을 떠나 어쨌든 책을 읽는 것은 행복을 공짜로 사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으니 34년을 살아도 얻을 수 없는 삶의 정답을 책 한권으로 만나는 셈이다. 비 쫄딱 맞은 강아지 마냥 웅크리고 있을 때도 시 한구절이 밥 한 숟갈 뜨게 할 때도 있고, 분노에 손이 떨릴 때도 정신과 의사가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어 준다. 기회조차 없는 세상이 팍팍하게 느껴져도 책 속에 있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현실을 이겨내고 삶을 개척한다.


‘책 싫어 병’이 나아지면서 합병증도 좋아졌다. 나는 마치 이영자처럼 이음식이 어떤 맛인지에 대해서 군침 돌게 설명할 수 있고, 재밌는 영화를 만났을 때는 노트 가득 장면들을 정리한다. 무엇보다 좋고 싫음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말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한다. 그렇게 사람들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책이 마구 물감을 뿌려주듯이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이 되어 간다. 


P.S ‘책 싫어 병’을 고치는 방법: 완독에 집착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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