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민지 Oct 17. 2022

날씨가 좋으면 낚시를 가겠어요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거나, 생각하는 것만큼 일이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받아쓰기를 백점 맞고 싶어서 열심히 공책 칸을 채우면 백점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오고 보니 내가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받을 때도 있지만 생각보다 자주 섭섭한 결과들이 성적표처럼 도착해 있다.


그래도 노력을 믿는 편이다.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래도 가끔은 로또를 사보고 당첨되지 않아 아쉽고, 사랑한 만큼 사랑을 바라면 안 된다는 진리에도 속이 조금은 쓰리다.


믿고 의지하는 회사 후배들이 있었고, 우리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부서마다 프로젝트 담당하는 사원들을 모두 모아 교육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여행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나 없이 교육에 들어가는 후배 두 명이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하냐고 진담 섞인 농담을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웃으며 돌아와서 내가 독학해서라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후배들은 프로젝트에 대해 단 하나도 진행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괜찮았다. 나도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내가 더 꼼꼼하게 독학해서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배 한 명이 너무 어려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프로젝트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괜찮았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를 할 때 인원이 줄어드는 것처럼 계획과 달리 변경되는 것들은 숱하게 많았다. 


남은 후배와 열심히 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를 붙들고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 물론 과정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결과는 좋았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도 후배는 이 일이 어떤 업무인지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고, 그저 분배 받는 일들을 묵묵히 했다. 괜찮았다. 열심히 독학해서 일했고, 좋은 성과를 냈고,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좋은 점수를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인생은 야박하게도 생각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관리자는 상반기 평가에서 그 후배보다 나에게 한단계 낮은 점수를 줬다. 그래도 별말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 후배가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냈고, 좋은 점수를 받은 만큼 일에 큰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큰 멘탈 붕괴 없이 넘길 수 있었던 건 낚시였다. 나는 처음 가 본 낚시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힐링을 선물 받았다. 동생들을 따라간 강에서 캠핑의자를 어설프게 펼쳐 놓고 강태공이 될 것 같은 큰 꿈에 사로잡혔다. 처음 해보는 낚시지만 붕어도 잡고, 잉어도 잡아서 외갓집에 가서 매운탕을 끓여 먹어야지 하고 기대했다. 수십번의 입질을 놓치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뒤 모든 걸 포기하자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강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춤, 풀잎들이 내는 소리, 잔잔한 강물, 멀리 보이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의 능선.


어쩌면 나는 잡을지도, 못 잡을지도 모르는 그 찰나의 순간에 곤두서 있느라 많은 풍경들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기대처럼 풀리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로 시야가 좁아져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마다 나는 낚시를 간다. 그러면 아무런 기대 없이 잡아도 좋고, 못 잡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낚시대를 툭 던져 놓고는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가, 커피를 마셨다가, 풍경에 눈을 맡겼다가 한다. 고전시가에서 낚시하는 강태공이 왜 자주 나오는지 알게 된다. 


운이 좋게 떡붕어나 잉어 같은 것을 건져 올리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고, 붕어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잘가 하며 보내준다. 그렇게 받은 힘을 그대로 안고 집에 돌아가면 세상이 내 뜻대로 안 풀리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다. 가끔 내 미끼를 물어주는 물고기들처럼 내 인생에도 불쑥 튀어나오는 크고 작은 행복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낚시로 인생을 논하다니, 마치 낚시고수가 된 것 같다. 낚시고수처럼 큰 낚시 가방도 없고, 고급 장비들도 물론 없다. 그래도 낚시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백 가지 좋은 점을 낚시고수처럼 알고 있으니 낚시고수와 진배없다. 가끔 받는 인생 성적표가 낮아 속상하거나 기대 보다 인생이 안 풀릴 때면 낚시할 때가 온 것이다. 딸기향 떡밥을 챙길 것.

이전 09화 책 싫어 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