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단어를 문장으로, 문장을 문단으로 쓰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건 문단부터 쓰는 역순의 프로세스를 절대 거칠 수 없다. 글을 쓰려면 머리 속에 단어를 떠올려야 하고,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고, 문단으로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단어는 머리 속에 갇혀 있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공책에 묻히기도 한다. 하나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유난히도 나는 완성이라는 것을 잘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사생대회에서 그림을 다 완성하지 못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단체로 버스를 타고 박물관에 도착해서 나눠주는 빵과 우유를 먹고, 그림을 완성하기 전부터 뛰어 놀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여기까지 색칠이라도 하라며, 손가락을 집었지만 친구들이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불렀다. 먼저 완성하고 기다리는 친구들과 완성하지 못하고 보채는 나 사이에서 우리 엄마는 아무 잔소리도 하지 못했다. 엄마처럼 많은 학부모들이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미완성 전문가인 내가 커서 대학교 조별과제를 할 때도 나는 내 분량의 몫을 완성하지 못했었다. 보석십자수나 퍼즐, 스도쿠 같은 것도 끝맺음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2013년에 드라마아카데미 면접을 봤다. 면접관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1:1 면접을 하는데 쓰고 싶은 드라마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절주절 얘기했다. 그때 면접관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떨어지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다시 시험을 보러 오세요.’
그렇게 드라마아카데미 면접에서 떨어졌고,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단어 그대로 알기만 했다. 그때 나는 고작 25살이었고,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올해는 꼭 완성할 거라는 다짐으로 3년이 지나 있었다. 나는 단 한 편도 완성하지 못했다. 사실 쓰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완성하지 못할 거니까.
완성을 못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림을 다 그리지 못하면 사생대회에서 떨어진 것이고, 조별과제를 못하면 내 이름을 빼고 조별과제가 제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보석십자수, 퍼즐, 스도쿠는 서랍에 쌓아 두면 그 뿐이다. 그런데 드라마 포트폴리오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도 나에게는 너무 큰 문제였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그때라도 쓰면 그만이겠지만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봄에 있을 면접에 가지고 갈 포트폴리오가 없어 27살에서 28살이 넘어가는 겨울에 나는 깊은 우울감을 겪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원인을 찾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완성을 못하는 지에 대한 문제를 집요하게 생각했다. 게을러서, 재주가 없어서, 바빠서, 직장을 그만둘 수 없어서. 수많은 이유들을 들어봤지만 아니었다. 나는 글을 쓸 때 완벽하고 싶어했다. 완벽하게 쓰고 싶으니 시도조차 못했고, 시도를 하더라도 완성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완성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성할 수 있는 힘. 그래서 뜬금없지만 뜨개질을 시작했다. 코바늘을 잡고 유튜브 영상을 수차례 돌려봐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망가진 실을 자르고, 또 잘랐다. 포기하면 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졌다. 졌었다. 보름 정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다시 시도했다. 조금씩 천천히 하나하나 실을 편물로 떠가기 시작했다. 삐뚤삐뚤 일정하지 않은 크기로 예쁘지 않은 어떤 이상한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완성이란 이런 맛이구나.
양손이 어느덧 적응을 하니 동그라미는 네모로, 세모로, 별모양으로 편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편물 조각들이 쌓이니 까슬까슬한 수세미 실로 수세미를 만들고, 부드러운 실로 가방도 만들었다. 완성품이 하나 둘씩 쌓이기 시작하자 다음 작업물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었고, 공을 들인 만큼 더 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담요를 뜨고, 가랜드를 만들고, 전자레인지 덮개를 만들었다.
뜨개질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 지인들에게 나눠주고도 남은 수세미들이 상자에 가득 있었다. 마침 회사에서 프리마켓 행사를 열었는데 상자를 들고가서 수세미를 전부 팔았다. 텅 빈 상자와 현금 봉투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완성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을.
작은 성공들이 모여 큰 성공이 된다. 뜨개질도 그렇다. 한 코, 한 코가 모여 면을 이룬다. 면들이 모여 담요가 되고 옷이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듯이 여러 편이 모여 책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쓴다. 나는 이제 완성의 뿌듯함을 아니까.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느냐고? 물론 완성했다. 하지만 드라마아카데미에 지원하지는 않았다. 대신 포트폴리오로 다양한 경험들을 더 할 수 있었다. 뜨개질은 계속 하고 있냐고? 물론 한다. 완성의 즐거움을 알려준 좋은 친구지만 장점이 정말 많다. 묵언 수행을 하게 해주고, 집중력을 길러준다. 무료하거나 손이 심심할 때 시간도 잘 간다. 가볍게 선물하기도 좋고,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선물하기도 좋다. 고민을 잊고 싶을 때도 좋다.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완성의 경험은 값지다. 결과물의 좋고 나쁨을 떠나 완성하는 경험을 꾸준히 만든다면 알게 된다. 완벽한 결과물은 어디에도 없다. 완성과 미완성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