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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삶의 한 챕터를 차지하지만 이미 끝이 난 이야기. 나는 20대~30대 초까지 긴 시간을 룸메이트와 보냈다. 중간 1~2년 정도 따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족히 13년 정도를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혼주의였기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고, 그 친구는 빨리 결혼을 해서 가정을 만들고 싶어했다. 우리는 죽이 잘 맞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의 결혼에 대한 소망이 점점 사라지면서 오랜 세월 함께하게 되었다.
함께하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방향성을 의논하게 되었다. 나는 20대 초반에는 서울에 가려다 실패하고, 중후반이 되어서야 춘천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큰 이벤트가 없다면 춘천에 평생 머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인생도 계획처럼 굴러가지 않았고, 춘천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20대 중반에는 29살이 되면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했다가 30살이 되었을 때 30대도 같이 보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완벽한 자취 생활은 아니었고, 중간중간 다양한 문제들을 만나면서 서로 미안했고, 고마워했다. 생활비는 깔끔하게 5:5로 나눠 부담했어도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나, 그 친구가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서로 좋은 것들을 해주기도 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곁을 내주고 많은 대화들을 하며 타지의 혼자살이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우리를 주변으로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결혼을 한 친구, 혼자 사는 친구, 독립을 아직 못한 친구 대부분이 우리의 관계를 신기해하기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크게 싸운 적도 없고, 취향이나 선호하는 것이 다를 때에는 따로 움직이고, 모두 좋아하는 것에는 함께 삶을 영위했다.
그렇게 결이 많이 달랐지만 서로 많은 것을 양보했고, 예의를 차리며 잘 살아왔다. 그러다 생긴 문제는 세번째 이사를 한 집에서 산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발생했다. 평소 우리는 경제적인 것 전부를 5:5로 나눴지만, 각자의 벌이에 대해서는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모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금액을 알지 못했다. 대충 얼마를 벌겠구나, 얼마를 모았겠구나 하는 희미한 숫자에 대한 짐작만 있었다.
구체적인 금액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 건 월세인 이 집을 재계약할지, 전세로 이사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다. 나는 재테크에는 까막눈이었고, 돈을 그렇게 성실하게 저축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20대 중반에 결혼을 목표로 했던 그 친구는 꽤 많은 저축을 했다고 하고, 월급도 많이 올랐다고도 했다. 그러면 우리가 월세를 벗어나 전세로 이사를 갈 때 그 친구의 목돈과 나의 목돈을 5:5로 합쳐서 이사를 가야하겠다고 의견을 모았고, 나는 그 친구가 모았다고 밝힌 금액 삼천만원을 목표로 돈을 차근차근 모으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다같이 술을 한 잔 마시면서 돈을 전혀 안 모으고 있는 친구에게 우리는 뭔가 적절한 조언 같은 것을 해준다고 천만원만 모아봐라, 절약을 해라 같은 소리를 던졌다. 가끔은 돈을 더 열심히 모은 내 룸메이트가 더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둘이 정말 나중에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겠다고 칭찬해줬다.
같은 꿈을 함께 이루어 간다는 건 엄청나게 매력적인 일이다. 동일한 관심사를 갖고 카페에 앉아 대화만 해도 활기가 도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은 전통가족의 종말과 함께 신가족화가 생기고 있다. 나도 우리가 새로운 가족 형태의 탄생이라는 뉴 트렌드에 합류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 생각했던 멋진 싱글족의 삶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와 함께 같은 꿈을 갖고 한 공간에 사는 새로운 가족은 생긴 것 아닌가.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부단히도 열심히 살았다. 2년 동안 우리는 어떤 구조의 집이 좋을지, 전세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지, 어떤 동네로 이사 갈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대화했고 퍽 즐거웠다. 중간중간 돈을 잘 모으고 있는지,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어려운 것은 없는지, 지금 걷는 생활비에서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없는지에 대해서 내가 자주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 친구는 어느 날은 잘 모으고 있다 하고, 이번 달은 쇼핑을 많이 해서 저축을 못했다고 하고, 명절에 부모님 용돈 드리느라 기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래도 요점은 잘 모으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투였다.
다행이었다. 내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돈을 열심히 모은 것도 다행이었고, 우리가 이제는 덥고 쾨쾨한 투룸에서 벗어나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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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운명인지 하는 것들이 있다. 옆집으로 이사 온 여자가 그랬다. 옆집 젊은 여자는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복도에서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고, 무뚝뚝했다. 가끔 옆집에서 장구나 꽹과리 같은 소리가 들렸고, 룸메이트 말로는 그 여자애가 할머니한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혼자 울기도 한다고 했다. 느낌이 싸했다. 나는 그 여자가 무속인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룸메이트가 건물주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국악 전공을 하는 학생이라고 했단다. 그래도 느낌은 뭔가 달랐다. 그러다 그 젊은 여자가 우리집에 빵을 주러 왔고, 나는 온 김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권했다.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대놓고 ‘무속인이세요?’할 수 없는 노릇으로 젊은 여자의 사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갈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답답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현관 문 앞을 나서면서 ‘사실 저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됐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속으로 궁금해하는 것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앞으로 신당을 모시고 점도 보고 굿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활짝 웃으며 알겠다고 하고 젊은 여자를 배웅했다.
그 여자가 무속인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범죄자가 사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직업이 무속인이라는 것으로 이사를 갈 필요는 없다. 그런데 소음은 다른 문제였다. 손님들도 계속 올 것이고, 장구나 북, 꽹과리 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넘어올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 슬슬 이사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다.
친구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지금도 충분히 좋다는 것이다. 근데 그 설득의 뉘앙스가 뭔가 이상했다. 2년 동안 같은 꿈에 대해 이야기했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소음이 힘들지 않겠냐고 했더니 자기는 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환경을 충분히 좋게 바꿀 수 있는데, 참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는 당장 이사를 가는 것 보다 1년 정도 살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귀가 어두워서 그 소리가 크게 들리지도 않았고, 벽을 마주하고 있는 친구가 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었다.
여름을 시작하는 그 시기에 나는 뭔가 이상한 촉이 생겼던 것이 분명하다. 무속인이 우리 집에 들러 맥주 한 잔 마신 보답으로 약간의 촉을 두고 간 것일까?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한 이번 일에도 나는 친구에게 통장을 보여 달라고 했다. 분명 무례한 것이고,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그동안 네가 모은 돈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고 통장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하니, 친구가 어정쩡하게 천팔백만원이 있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액수가 많이 이상했다. 왜 돈이 줄어들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했고, 미안하다고 앞으로 돈을 열심히 모으겠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게 내가 그 친구의 모든 면을 아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그 친구 이름으로 도착하는 갑자기 늘어난 택배들도 요즘 뭘 많이 사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어느 날 가계부 정산 겸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재테크 공부를 하고 보니 저축만이 능사가 아니고 주식, 펀드 등에 대한 재테크도 필요하다고, 연말정산을 잘하는 법, 예금 금리가 높은 상품을 찾는 법 등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적금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상품에 가입하고 있는지 더 높은 적금 금리 상품에 대해서 알려주겠다고 신나게 어플을 열어서 설명해 주려다가 한달 저축 금액에 대해서 물었다. 한달에 30만원을 적금으로 넣고, 10만원으로 청약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머지는? 뭔 나머지? 진짜 제발 통장 좀 보여주면 안 돼? 아니 어플을 열어 봐. 내 어플에는 없어. 그게 왜 없어. 요즘은 다 연동이 되는데. 같은 긴 실랑이가 오고 갔다.
혼미했다. 그렇게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게 대화한 적이 있었을까? 친구는 어플을 보여주며, 연동이 안되어 있다고 했고 통장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친구 휴대폰을 직접 들고 어플 이곳 저곳을 눌러 보면서도 적금 통장은 하나도 없었고, 월급 통장에 몇 십만원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이제는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이상한 촉이 그 친구는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머리 속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친구는 실토하고 모은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럼 나와 사는 동안 얘기했던 돈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또 물어도 결론은 0원이었다. 친구는 수중에 돈이 없다고 울었다.
나는 괜찮다고 다독였다. 그게 내가 나와 같이 20대의 여정을 보내온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용서 같은 것이었다. 내가 노력한 2년 넘는 세월동안 돈을 열심히 모은 것처럼 내가 이 친구를 도와주고, 이 친구도 열심히 돈을 모으면 2년 후에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 거니까. 차라리 지금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많이 화가 났고 답답했고 눈물도 났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상담도 했었다. 하지만 일은 이렇게 벌어졌고,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는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약속하고, 월급 계획 예산서 같은 것을 같이 만들면서 금융 어플을 활용하면 좋다고 알려줬다. 근데 그게 또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