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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Oct 17. 2022

멋진 30대 싱글족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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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화해하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이건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얼굴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힘들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네가 다 이해하고, 네가 먼저 사과하라고 큰 언니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당장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부모님 아파트를 빠져나와서 심리상담센터 예약을 했다. 내가 부모님에게 받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위로, 용기, 다독임, 이해, 공감? 모르겠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먼저 화해하라는 조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문한 심리상담센터에서 나는 눈물, 콧물이 고장난 아이처럼 울었다. 생전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자꾸 울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계속 울었다. ‘그러니까 제 친구가요. 죄송합니다.’, ‘친구이긴 한데 친척이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근데 차용증을 안 썼고요.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용서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끊지 않았다. 다 젖은 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려 주시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주시고, 새 티슈를 꺼내 주셨다. 그렇게 1~2회 상담에서는 내리 울기만 하고 집에 왔다. 그렇게 다 쏟아내고 나오면 개운했다. 뭔가 겪어보지 못한 개운한 느낌이었다. 초면인 사람 앞에서 이렇게 울어도 되는 건지, 이게 울 일인지 끊임없이 검열하면서도 누군가 내가 우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 봐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7-

상담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나는 점차 덜 울게 되었다. 선생님은 이 사건, 부모님, 친구들, 폭음, 룸메이트, 삼촌, 돈, 재테크, 집에 대한 의미와 감정 같은 것들을 물으셨고,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리한 것들에 대해서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나요?’라고 반문하면 선생님은 그런 생각은 안 해도 좋다고 하셨다.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의 장은 편안했다.


선생님은 초반에 어떤 것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물었고, 내가 뜨개질, 낚시, 독서, 영화, 산책 등에 대해 나열하면 일주일 동안 가장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뜨개질만 하고 싶다고 하니 그것만 하라고 하셨다. 나는 퇴근을 하고 일주일동안 뜨개질만 했다. 청소도, 강아지 산책도, 재테크 공부도 하지 않고 손목이 나가도록 수세미를 떴다.


선생님이 부모님에 대해 물으셨을 때도 ‘부모님이 저에게 사과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맏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또 다시 엉엉 울었다. 내 안의 어두운 그늘에는 내가 맏이이기에 지켜야 하는 큰 역할 같은 것들이 있었다. 먼저 사과해야 하고, 내 일이 아닌 갈등도 해결해야 했다. 작은 슬픔에는 서러워하지 않고, 큰 슬픔에도 담담해야 했다. 그럴수록 일부러 청개구리처럼 갈등을 만들었다. 그럴 때 유일하게 내가 의지한 사람이 그 친구였다. 의지하는 단 한 사람이 10년 동안 나를 속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 컸다.


선생님이 집에 대해 물으셨을 때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는 대답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상담에서 대답이 아니니까. 


좋은 집에서 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꼬마 때 살던 전원주택이 생각났다. 나와 남동생이 훌라후프를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작은 마당, 거기에 있는 키가 작은 나무들.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청소년기에 보낸 작은 방은 나와 여동생이 누우면 가득 찼다. 그러다 대학을 간 후 집이 어려워졌고, 나는 빨리 자수성가는 못하더라도 내 입에 풀칠을 해야 했다. 입에 풀칠을 하는 사회생활 동안 나는 내가 어릴 적 뛰어놀던 마당을 갖고 싶어한 것 같다. 그러니까 집은 나에게 삶의 안정감, 평화로움, 입에 풀칠을 덜 해도 되는 경제적 여유의 징표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친구와 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다. 원상복구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나라는 집에 산사태가 났고, 나는 집을 다시 복구하고 싶었다. 폭음을 하지 않고, 울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이 그러기 위해 뭐부터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정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우선 집에서 버려야할 것들을 모두 버렸다. 장식을 한다고 쌓아 둔 와인병 100개를 모두 버렸다. 화장실 선반에 모아둔 샘플, 주방에 먼지 쌓인 그릇들, 말라죽은 화분, 쓰지 않는 옷, 신발, 가방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쓰레기장에 버렸다. 내가 가장 아끼는 책 몇 권을 제외한 책 백여권을 버릴 때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다 버려야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으로 상담을 끝마쳤다. 선생님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이미 나에게 있다고 응원해 주셨다. 나는 그 응원을 진심으로 받았다. 나는 이제 오롯이 혼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일이 내 인생의 중요한 꼭지점이고,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이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 버리고 깨끗해진 집을 보니 그 다음 나아갈 방향이 보였다. 더 쾌적하고 좋은 집으로 가야한다. 그렇게 좁고 더운 월세집에서 탈출했다. 고마운 친구들과 동생들과 은행의 도움으로. 수많은 질문을 통해 내가 스스로 힘을 내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상담 선생님의 위로로. 인생의 굴곡을 또 한 번 이겨낸 나의 단단함으로.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나니 가을이었고, 나는 조금 멋진 30대 싱글족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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