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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어플은 나날이 발전하여 모든 금융사를 연동할 수 있고, 그러면 내가 가입한 금융상품, 보험, 자동차, 대출상품 등을 보여준다. 며칠이 지나고 가계 예산을 다시 짜고, 재무 설계를 도와주기 위해 친구 어플을 내가 이리저리 만지며 연동을 했고 업데이트를 기다렸다. 업데이트 완료와 함께 -47,000,000원이 보였다. 그날은 하필 주말이었고, 나는 연동 오류라고 생각했다. 주말과 연동 오류는 아무 관련도 없는데도 말이다.
마이너스가 붙은 최종 금액을 보고 머리가 아찔했다. 빚이 아주 조금 있을 수는 있어도, 이 친구한테 사천칠백만원 만큼의 대출이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새 차를 뽑아 이 친구는 면허도, 차도 필요 없었다. 학자금 대출금을 다 갚았을 때는 축하한다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 친구가 크게 아픈 적도, 사고를 친 적도 없었다. 왜 -47,000,000원이 어플에 떠 있는지 도무지 정리가 안됐다.
삼천만원부터 시작한 거짓말이 천팔백만원이 되었다가 0원이 되었다가 마이너스 사천칠백만원인 것을 보고는 나는 10여년을 누구와 무엇을 하며, 무엇을 위해서 살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 친구를 이렇게 모를 수 있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잴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가 보일까?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없다고 말했던 친구에게 원망스러웠다가 슬펐다가 분노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칼을 맞은 건가? 나는 이미 살기 좋은 ‘우리’ 집이라는 목표를 포기하면서 이 친구의 0원을 이해하기로 했으니 마이너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는 내가 대출 사천칠백만원을 발견했다는 것을 아직 몰랐고,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없는지에 대해.
친구는 활짝 웃으며 이제 정말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이성의 끈은 끊어졌다.
불 같이 화를 내며 대출상품들을 봤다. 6년 전 받은 대출 상품부터 최근 2년 동안 받은 대출만해도 3천만원이 넘었고, 모두 1금융권이 아니라 2, 3금융권이었다. 낮은 대출금리가 7~9%대였고, 높은 금리는 12%가 넘고 있었다. 하나하나 설명을 해보라고 했고, 그 친구는 하얘진 낯빛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이성을 찾고 대출 상품을 모두 계산했다. 갚아야할 원금과 이자를 계산하니 7천만원 정도 되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하라고 하니, 지난 몇 년간 있었던 대출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모르겠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이유로 본인 명의로 대출을 이만큼 받아줄 수 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차용증 한 장 없이, 단지 신뢰라는 명목으로 이만큼의 대출을 내어주고, 신용도를 다 까먹을 수 있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직장 동료에게 그만큼의 대출을 내어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나? 내가 그 채무자의 얼굴을 본 건 스치듯 한 번이었고, 나는 그 희미한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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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 긴 시간 분노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어르고 달래고 싸우고 욕하고 2주 동안 우리는 무너졌다. 룸메이트라는 네글자로 우리를 설명하기에는 우리는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였고, 우리 엄마의 소중한 조카였고, 내 20대를 같이 보낸 가족이었다.
나는 이 상황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출의 늪에 내 코가 곧 낄 것이라는 무서운 상상도 했다. 내가 대출을 받아서 돈을 갚아주지는 않아도 조금씩 무너지는 친구에게 나는 내 살점들을 하나씩 내어주겠지. 그러면 우리는 이 월세집에서 몇 년을 더 살게 될까? 에어컨도 없고, 베란다도 없는 좁은 투룸에서 나는 마흔을 맞이하게 될까?
친구의 아버지, 나의 삼촌에게 이 사실을 모두 알리자고 했다. 이것은 정말 큰 문제고, 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사이즈라고. 네가 버는 돈보다 네가 갚아 나가야할 몫의 돈이 더 크다고. 지금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지금은 당장 버틸 수 있어도 곧 부러질 것이라고.
(이 순간 나와 삼촌이 이 친구의 소소하고, 자잘했던 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동안 아주 귀여운 수준의 일들을 몇 개 해결한 기억들이 그제서야 소환되었다. 우리는 5:5의 생활비를 나눠내지만 그 관리를 내가 하기 시작한 것도 그간 자잘하게 있었던 이 친구의 돈 문제였다.)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만큼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온갖 험한 욕과 상처주는 말들을 기관총을 쏘듯이 뱉어냈다. 그 사람을 내가 만나보겠다고도 하고, 변호사를 만나보자고도 했다. 친구는 홀린 사람처럼 자기가 다 해결하겠다는 말만 했다.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문제없다고 했다.
괴로운 시간이었다. 긴 고민의 끝에 내가 헤어지자고 말하면 이 친구는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우리 친구들은, 가족들은, 강아지들은 어떻게 될까? 계속 같이 산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그 친구가 빚을 갚는 모든 시간을 괴로워만 하면서 보낼까? 남일 보듯이 아니면 내 일인 것처럼 어떤 지점에서 나는 그 친구를 대해야 하나? 그 인고의 시간을 다 버티면 40대에는 좋은 집으로 이사 간다는 확실한 보증이 있나? 그런데 왜 자꾸 얘는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 거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가. 내가 지금 너무 혼자 심각한 건가.
헤어지자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집에서 나가 달라고. 이 집의 보증금도 모두 내 돈이었고, 세탁기도, TV도 내가 산 것이니 이 집을 버리고 나가라고 했다. 그러면 정신을 좀 차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친구는 짐을 싸서 나갔다.
(이 때도 삼촌이 이 친구의 원룸 보증금을 줬다는 소식을 한참이 지나서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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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만들 문제였나 싶기도 했다. 끝없이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그 돈을 그 사람에게 빌려준 것은 진실인지, 사이비 종교에 헌금을 했거나,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것은 아닌지, 나 몰래 합의할 다른 사건이 있었는지 오만가지 상상을 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내가 찾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끝없이 생각했지만 머리 속에 안개가 짙게 깔린 느낌이었다.
친구들을 붙잡고 겪은 일에 대해 토로해도, 친구들이 그런 나를 위로해도 이 배신감은, 이 허탈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고 단정지어도 다음 날 눈을 뜨면 멍청하게 당한 게 나인지, 내 친구인지, 우리와 같이 사는 개들인지 몰랐다. 이런 일에는 피해자가 있기는 한 것인가? 가해자는 또 있는가? 그럼 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내가 무슨 피해를 본 것일까? 배신감을 피해라고 봐야하나? 꿈이 사라진 것에 대해 재산 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나? 꿈이 사라진 것을 폭력으로 볼 수 있나? 그 무속인은 나를 구제하려고 온 것인가? 나를 무너지게 하려고 온 것인가?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 끝은 날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울고, 불고 해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적절한 손절이었고,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내가 매정했나 하는 자기 검열을 끊임없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