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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Oct 17. 2022

욕조 찾아 삼만리

나의 조부모는 시골 마을에서 제법 큰 목욕탕을 운영하셨다. 그것은 일생의 축복이었다. 부모님이 중국집을 운영하면 대게 자식들은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였다. 365일 중에 365일을 목욕탕 온탕과 냉탕에서 물장구를 쳤다. 어느 날은 아침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한바탕 치고 나서도 마감 청소를 하는 시간에 또 들어가서 온탕에 몸을 둥둥 띄었다. 물이 가득한 곳에 있을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얼마 안 돼서 목욕탕은 문을 닫았다. 그 일이 내 인생 첫번째 비극이었다. 나는 아직도 목욕탕을 닫지 않았으면 우리 가족이 더 잘 풀렸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재미삼아 보러 간 사주에서 내 사주에는 물이 부족하다고 했을 때 무릎을 쳤다. 괜히 음양오행이 있는 게 아니구나. 물과 멀어지면 어쩐지 일이 잘 안 풀리더라.


365일 물놀이를 할 수 없지만 여름이 찾아오면 수영장이나 강가에서 헤엄을 쳤다. 넓은 강가에서 물속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는데, 하늘을 뒤집으면 이렇게 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윙윙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거나 귀속으로 물이 가득 차면 나는 지구를 등지고 완벽히 혼자가 되는 기쁨을 느꼈다. 멀리서 친구들이 라면 먹으라고 소리를 쳐도, 튜브를 타고 물장구치는 동생들의 웃음소리도 꼬르륵하는 물소리가 한번 막아주면 지구 반대에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 물 속에서는 오롯이 혼자다.


나는 독립을 하고 총 4번의 이사를 했다. 


첫 번째 대학가 원룸촌에 있는 4평 남짓한 방이었다. 그 집은 욕조는커녕 세면대도 없었다. 그냥 쪼그리고 앉아 세수를 하거나 허리를 110도 정도 숙여 머리를 감았다. 두 번째 집은 15평짜리 작은 아파트였다. 세면대가 드디어 생겼다. 세 번째 집은 24평에 다가구 주택이었다. 처음으로 욕조를 샀다. 강아지 욕조.


네 번째 집을 찾으러 내가 사는 지역의 스무 곳이 넘는 집들을 보았다. 그 많은 집들 중에서 욕조가 있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이사를 계획할 때 여러 조건들이 있었지만 욕조를 필수 조건으로 하기에는 내 코가 석자였다. 욕조가 없어도 좋은 가격에 깔끔한 집이고, 내 반려견들과 누울 수만 있다면 어디든 오케이였다. (이 시기가 부동산 집값이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욕조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러다 내 예산을 조금(많이) 초과하는 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드디어 만났다. 욕조. 이름부터 특별한 욕조. 그것도 2명이나 나란히 누울 수 있는 큰 욕조였다. 


첫 눈에 반하면 머릿속으로 사귀고, 싸우고, 화해하고, 찐하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예쁜 자식을 낳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나는 욕조를 보자마자 이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힐링 타임을 상상했다. 그렇게 나는 욕조를 아니 집을 계약했다.


  유학생활을 하다 한국에 들어와 김치찌개를 먹는 마음으로 요즘 목욕에 미쳐 있다. 환경운동가들이 단체로 몰려와 시위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욕조에서 산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수도세와 도시가스요금 고지서를 보고 욕조와의 장거리 연애를 고려 중이긴 하다. 고려만 하는 중이다. 


지구를 등지고,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세상에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물소리만 가득한 공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정화가 되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TMI: 2021년 9월 욕조를 다시 만나기까지의 긴 여정의 끝, 환경을 생각해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환경은 핑계다. 수영이 하고 싶었다.) 고요하진 않지만 어푸어푸하는 내 숨과 나를 꽉 감싸고 있는 물의 중압감을 다시 느끼니 나는 목욕보다 수영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양오행은 참 신기하다. 수영을 다니고 나는 더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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