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리뷰
무더움이 밤에도 이어지는 여름밤, 퇴근길에 갑작스러운 비에 몸을 피하다가 전 남자 친구 주환의 집 근처에 오게 된다. 공중전화 부스로 비를 피하던 지영이 망설이다가 주환의 집 문을 두드리고 주환은 흔쾌히 문을 열어준다. 비를 핑계로 들어간 공간은 곳곳에 변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소거된 감정은 사랑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했지만 남겨진 공간과 사람은 늘 그대로인 모습에 괜스레 슬퍼진다. 하지만 미련이 남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대비된 마음이 흐릿해진 마음을 또렷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간에서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옮겨가는 영화는 추억이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감정을 조명한다. 비처럼 씻겨 내려가지 않은 기억과 비가 오지 않으면 짐이 되어버리고 마는 우산은 그 공간을 벗어나며 ‘미련’이라는 단어를 잉크처럼 퍼뜨린다. 상황의 그리움은 남았지만, 사람의 사랑은 다시 피어오르지 않고 변한 마음으로 가득 찰 것이다. 추억은 추억, 기억은 기억, 사람은 사람 자체로.
수경 / 비를 핑계로 너를 찾아갔다. 나와 함께했던 흔적과 내가 떠나갔던 그 공간이 그대로인 모습이 익숙하다. 그 공간을 미련 없이 나온 후, 옮겨진 감정은 네가 수경을 쓰고 슬픔을 쏟아냈던 것처럼 옮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너를 바라봤지만 실은 솟아오른 그리움이 울컥 흘러넘치는 걸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주환 / 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고 네가 돌아올 자리가 여전히 있는 이 공간에 네가 돌아왔다. 익숙한 이 공간에 너만 없는 이곳에 너를 다시 데려오려 애쓰지만 너는 각자 잘 지내자고 그렇게 말한다. 손을 흔들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미련을 완전히 떠나보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비 맞지 말고 잘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