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적표의 김민영> 리뷰
19살과 20살의 사이.
수능 100일을 앞둔 세명의 친구는 삼행시 클럽의 해체를 선언하며 마지막 삼행시를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수능을 지나 한 여름으로 시간을 옮겨온다. 계절은 시간이 무색하게 훌쩍 지나가버린다.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마주한 서로의 모습은 참 많이 달랐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도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했던 과거와 달리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털어놓는 현재의 모습만이 남아있는 모습을 발견해서일까.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달라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 거리도, 마음적 거리도 조금 더 벌어질 사이를 다시 예전처럼 돌릴 수 있을까.
지나간 관계 혹은 매듭 지을 마음.
한때, 어떤 순간이 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관계는 친구사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억압'의 교복을 벗고 '자유'라는 겉옷을 걸치는 순간, 생기는 마음의 거리는 그동안의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서로가 아니어도 괜찮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험은 그동안 어떤 것을 경험했나 싶을 정도로 거리가 먼 것들로 빼곡하게 자리를 메운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잠시 불어닥치는 현실의 무게는 그 고민조차 사치인 듯 다가와 짓누른다. 물리적 거리가 준 거리감이 가져다준 변화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노력을 해야만 마주 볼 수 있게 된 세 사람의 추억은 그저 지나간 것에 불과한 걸까. 모두가 다른 환경과 시점에 놓인 이 상황에서 여전히 같을지 모를 짙은 적막 속에서 지나간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본다.
마음이 이어진 것.
새로 연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지금의 관계를 끊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의 결정 앞에서 이어진 마음은 현재의 모습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과거의 선택에 의한 현재의 모습이다. 전혀 나아지지 않는 모습에 불과한 걸 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불쑥 찾아오는 어떤 형체는 희망과 기대를 잔뜩 안고 있지만 현실은 너무 다르다. 그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마음을 여전히 이어온 채, 혼자 그곳에 남아있다. 최선을 다한 관계는 후회가 남아도 미련은 없으니까. 바보 같은 힘이 주는 용기를 내지 않고 살아간다. 이렇게 각자의 서운함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너무 다양하게 나타난다. 서운함으로 이어진 마음의 실타래는 이리도 굵고 진하게 자리를 잡았다.
생기 없는 얼굴,
등을 돌리고 있던 그때도 함께였던 관계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있다는 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바뀐다. 그래서일까, 그 생기 없는 얼굴에서 씁쓸함과 미묘한 섭섭함의 감정이 잔뜩 묻어난다. 언제쯤이면 웃음이 피어날 수 있을까. 지독하게도 감정에 휘둘리게 만드는 관계의 향연이다.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청춘의 시련은 연속해서 찾아온다.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이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도 한다. 사정은 소거되고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더욱 그 관계에 집중하여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한 번쯤을 느꼈을 감정의 크기로 은유적인 표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군가 불러낸 침묵 속에서 마주한 소용돌이
제목은 성적표의 김민영이지만 김민영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유정희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친구는 세명이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조금 더 친한 민영과 정희의 사이에서 벌어진다. 목적을 잃은 것도 잠시 친구 민영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 가게 된 정희는 그때의 기억을 안고 가듯 많은 짐을 싸들고 간다. 하지만 정작 민영은 정희가 안중에도 없는 듯 노트북 화면 들여다보며 성적 정정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꽤 오래 지속되던 침묵을 견디고 있던 정희가 그 침묵을 깨고 속마음을 털어놓지만 관계의 회복이 아닌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렇게 민영 없는 민영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데도 몰랐던 민영의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꽁꽁 숨겨놨지만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는 그 마음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너이기도 했고 나이기도 했던 우리는 과거의 자리에 서있다.
너는 나에게 몇 점일까.
서운한 마음만큼이나 이름에 성이 붙는다. 마음은 아마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봉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정 지을 수 없는 어떤 상황들이 불쑥 친구가 된 것처럼 다시 만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 싫어했던 모습을 그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변함없던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싫어하면서도 지속하는 그의 행동이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는 만큼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않은 현실이 흐트러 놓은 짐보다 너저분하게 깔려있다. 점수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그에게 닿을지 알 수 없지만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