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Jan 30. 2023

그것은 그저 계기에 불과한 일.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리뷰


이민용 감독의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는 1995년에 나왔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파격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볼만한 가치가 상당하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 영화를 먼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개 같은 날의 오후가 시작된 건 타협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면서부터였다. 쉽지 않은 길로에 놓이게 된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힘든 상황을 버텨내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뜨거움을 느껴보자. 각기 다른 얼굴에서 마주하는 변화의 물결이 시작될 것이다.





유난히 평소와는 달랐던 어느 날.

땀이 국물처럼 흐르는 무더운 날, 역대급 더위를 갱신하던 어느 날이었다. 곳곳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며 작지만 큰 일들이 벌어지는 한 아파트의 모습에 집중한다. 가정폭력을 상습적으로 당하는 모습, 원치 않는 관계를 맺는 모습, 자녀로부터 구박을 받는 모습이 평화로운 집 밖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터지고야 만다. 신호탄이라도 되듯 정희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밖으로 도망쳐 나오며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가정폭력은 사적 영역으로 인지되어 누군가의 개입이 극히 소극적으로 이루어졌고 여전히 그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희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밖으로 도망쳐 나왔음에도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력에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여성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성구를 때리며 정희를 그에게서 구해낸다. 계속 이어지는 대치 상황에 급기야 남자와 여자의 싸움이 되고 그로 인해 경찰이 아파트에 오게 되면서 여자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피신하게 된다.



변화는 다름이 아님을.

10명의 여성 캐릭터는 각기 다른 모습의 차별을 안고 있다. 그로 인한 갈등 또한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여자들은 견뎌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연대하며 버텨낸다.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많은 여성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다음으로 나아갈 희망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는 '여자'라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포용하며 극복한다. 누구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공존하지 않고 대치하는 것은 그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타의에 의해 올라갔던 옥상을 자의에 의해 내려온다. 분노로 상황을 대치했던 초반의 모습과는 달리 여유로운 미소를 띠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느끼며.

교차되는 장면들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행동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이토록 여성의 목소리를 뚜렷하고 크게 또 잘 드러낸 영화가 있었던가. 대단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사람' 그 자체로 장면들이 또렷해지는 순간의 연속이다. 의미 없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또한 빼곡하게 채워 넣고 빠짐없이 꼭꼭 씹어낸다. 어떤 폭력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회 운동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함께 함으로써 당연하지 않은 관습이 되는 것처럼 잘못된 행위에 대해 아니라고 꼬집을 수 있는 용기를 내어준다. 비현실적인 상황과 허술해 보이는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난 영화의 관점이 유쾌하게 완성도를 높였다. 문제 제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지점에 도달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하나의 흐름으로 남는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어떤 폭력의 모습이 이젠 과거의 이야기로 남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