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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r 18. 2023

깊은 유대만큼이나 굳게 박혀버린 관계의 이상.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리뷰


사소한 일에 불과한 일들이 그토록 가까웠던 사이를 한없이 멀게 하기도 한다. 그 잔혹함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냉혹하며 전쟁과도 비슷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영원한 관계도 만남도 없지만 한마디 말도 없는 이별은 납득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에 한없이 멀어진 두 남자의 단절을 표현한다. 3월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하여 더욱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끝난 관계.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친한 사이인 콜름과 파우릭. 늘 그렇듯 같이 맥주를 마시기 위해 콜름의 집에 찾아가 이야기를 건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며 자신을 피하는 콜름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콜름은 싫어졌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하고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파우릭은 단순하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콜름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파우릭이 건네는 말과 행동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과연 두 사람은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단절의 폭력성과 다정함의 흔적.

영화는 그들의 친밀했던 시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어느새 끝나버린 두 사람을 비춘다. '왜?'라는 이유를 찾아가면서 소거된 다정함의 흔적을 좇는 파우릭. 오직 자신에게만 매정한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어 처진 눈썹과 찌푸린 표정으로 콜름의 주변을 맴돈다. 계속된 집착에 콜름은 자신의 앞에 계속 나타나면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는 끔찍한 말을 하면서까지 그를 멀리하고 싶어 한다. 그의 주위를 맴돌며 따뜻하게 스며들었던 다정함은 그저 과거가 되어 핏빛으로 물든다. 그 무력함 앞에 놓인 파우릭의 표정이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내전과 관계의 상관성.

소통의 단절에 정반대의 두 사람의 이별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을까. 균열의 여파는 점차 심해져 마을을 뒤덮는다. 내전이 아일랜드 전체를 뒤덮었듯. 떠나지 못한 그 마음은 죽음과 가까워진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끝난 관계를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과 이미 끝난 관계를 끝내고픈 한 사람의 모습이 대조된다. 파우릭과 콜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관계의 균열은 여동생이었던 시오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변화로 이어져 미뤄왔던 그 선택을 이제는 해야만 하는 현재에 다다르게 된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이유.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하려 했던 곡은 ‘이니셰린의 밴시’였다. 파드릭의 장례식 추도곡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를 아낀다는 것인데,  왜 절교를 결심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초반에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의 시선은 철저히 파우릭의 시점에서 보이기 때문이었다. 콜름은 파우릭과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좋은 곡을 쓰기 위해 그와의 만남을 중단하려 한다. 무료한 만남과 헛되이 쓰이는 시간은 자신이 평생 일구어왔던 예술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며 집착하는 모습이 그동안 그를 겪여왔을 콜름의 절교의 이유가 납득이 된다. 일방적이고 발전 없는 관계에 대한 무의미함은 의미를 되찾기 위한 노력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떠나지 않는 콜름은 어쩌면 이 섬에서 파우릭이 사라져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그런 노력을 기울인 게 아닐까.



같은 시간 아래 다르게 사용되는 시간.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나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영화 속의 배경은 1924년 내전 중인 아일랜드의 외딴섬인 이니셰린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가상의 섬은 매우 평화롭지만 바깥은 내전 중이라는 사실은 뉴스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들 것 같은 관계의 단절은 아일랜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과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무의미함과 무수한 비극성은 잔잔하다가도 격렬하게 타오르는 공간에 의해 도드라진다. 정반대의 두 사람의 대립은 인간의 근본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밴시 ben síde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민화 속에 나오는 요정. 울음을 통해 가족의 죽음을 예고한다고 한다.

소녀, 귀부인, 노파 형태를 보이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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