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리뷰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인 아녜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인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이다. 자신이 찍어온 영화들과는 다르게 이번엔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곳곳에 거울을 비치하여 해변과 사람들을 비추고 장면을 전환하여 프레임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프레임을 벗어나고 곧이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감독은 거울을 통해 한 사람씩 제작진을 소개한다. 자신의 망상과 막연한 상상에 의문을 갖지 않고 참여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일부와 같은 해변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풍경이 보일 텐데,
나를 들여다보면 해변이 있을 것이다.
고기잡이와 그물
어린 시절이 그립지는 않지만 사진을 보는 건 좋아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이 인생 전체의 토대라는 말이 아녜스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끈끈한 유대가 없을뿐더러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저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에 불과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볼수록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린 시절은 자신의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아득한 옛날을 상상하는 일은 참 재미있다고 표현한다. 자신이 머물렀던 장소를 찾아가며 기억을 되짚고 곳곳에 스며들었던 흔적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되짚어보면 자신의 일부와 마찬가지였던 일들이 마냥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진과 특별한 기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위를 관찰하는 아녜스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한다. 27살 첫 영화 상영, 전쟁의 피난, 해변은 시간을 거슬러 현재에 와 부두에서 생활했던 흔적으로 향해간다. 그때는 몰랐던 이야기와 의인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복합적이었다. 뒤이어 아녜스는 바로 어린 시절 만나 들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영화로 찍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건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영화 초반에 지긋한 나이의 노인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이유도 이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녜스의 영화에 등장한 어린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이와 노인 같이 처음과 시작이 맞닿아 있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담겨 있었던 것일까.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과 그 흔적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다.
의혹의 시절.
그전엔 지나가지 못했던 세트를 가로질러 당도한 곳은 가족들을 한곳에서 만났던 곳이었다. 여전히 머문 어둠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으며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계속해서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남자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던 바르다는 방황하게 된다. 가출을 해야 할 것 같아 계획을 했으며 마침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첫 자유의 밤을 즐기던 그녀는 어부와 일을 시작하며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고 3달 동안 고된 일을 하며 내면의 변화를 마주한다. 그리고 파리로 돌아간 그녀는 사진을 배우며 자신의 길을 넓혀가는 일을 병행한다.
파도의 색깔과 같은 영화.
과거의 흔적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여러 일은 모든 일의 양분이 되어 하나의 길인 아녜스로 흘러들어 갔고 그 모호함은 현재의 미묘함으로 다가왔다.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 곳곳에 그녀의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당연함을 부여하지 않으며 감사함을 표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으며 소중한 이였던 자크 드미에겐 더더욱. 많은 공유했던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좋은 기억도 존재하지만 힘들기도 했던 그때는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는 사랑이 되었다. 언어로는 양에 차지 않았던 아녜스는 사진에서 영화로 넘어가게 된다. 언어와 이미지가 결합한 게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게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녀의 영화는 곧 누벨바그의 초창기였으며 그들이 참여한 영화의 세상은 넓어진다. 사진과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선사하며 그녀의 곁을 맴돈다. 그렇게 모든 순간은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되며 거대한 이야기로 남는다.
다큐멘터리는 따분하다고 느껴져 몰입감이 떨어져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르다. 자신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영화 내내 정말 흥미로웠다.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에서도 세상의 많은 고민과 문제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했던 영화의 순간을 나열하고 행동했으며 담아냈던 그때를 떠올린다. 과거는 미래에서 보았을 때, 더욱 아름답게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는 해변에서 시작하여 해변으로 끝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인생을 담으며 이어지는 영화는 여전히 그 안에 생생히 살아있다.
이미지와 결부된 이 순간의 감각은 남을 거예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기억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