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리뷰
<미안해요, 리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전에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사회문제와 더불어 복잡한 이해관계를 잘 표현하는 켄 로치 감독은 과거부터 이렇게 쌓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제5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며 피지배국이 아닌 지배국인 영국인의 시선으로 다루어 내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아일랜드의 역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보다 더 사실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는 또 단정 지을 수 없어서 더욱 깊게 와닿았다.
보리밭을 시도 때도 없이 흔드는 바람들.
1920년, 아일랜드. 전통 경기인 헐링을 즐기는 청년이 경기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평화로움도 잠시 영국군이 마을에 들어 주민들을 총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집합금지를 위반했다며 마을 청년들을 줄 세운다. 그리곤 아일랜드 말을 한다는 이유로 17세의 어린 소년을 끌고 가 목숨을 잃게 만든다. 조금씩 퍼져가는 분노는 영국군의 잔혹한 횡포에 의해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의사의 길을 걸으려 하던 데미언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독립운동 단체인 IRA에 들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점점 격해지는 투쟁과 보복은 악순환을 불러일으키지만 미세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극은 왜 반복되는가.
분명 무언가를 위해 싸웠는데, 명확해지지 않는 것들로 가득한 현실을 마주한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들지 않았던 생각들이 점차 '다음'을 생각하며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분명 목적은 같지만 조금씩 다른 스스로의 가치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이었는데, 미세한 차이에 의한 사소함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개인'으로 남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실체를 드러냈지만 모두가 보지 않았던 그 본질이 유도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펼쳐지는 분노는 마주할 수 없음에 더욱 커져간다. 어디에도 닿지 않아 가슴 깊이 파고든 상처는 결코 다르지 않은 과거와 만나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비극은 왜 반복되는 걸까. 의외로 상황은 독립이 점점 가까워지며 악화되고 처음과 마지막의 폭력을 위한 폭력은 반복되고 있었다. 그저 가치관의 충돌로 보였던 순간들은 이념에 의해, 종교에 의해 점차 비극의 길로로 안내한다. 비극은 반복되어 그들의 상실에 물들어 반복된다.
오랜 역사와 벗어나고 싶은 마음.
아일랜드는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왔다. 그렇게 '타의'에 의해 영토의 일부로 받아들여져 지배를 받았으나 수탈과 억압이 심했기 때문에 더욱 큰 갈등을 맺어왔다. 종교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의 분쟁은 독립운동을 불러왔고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독립을 쟁취하고 나서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생각은 북아일랜드와의 분단으로 이어지며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이들은 왜 갈라져야 했을까.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흘린 피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일궈낸 독립은 그들의 한 역사로 남았다.
비극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말들.
화려함으로 둘러싸인 국가들의 이면은 이토록 잔혹함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크게는 국가와의 충돌, 작게는 형제의 충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개인의 선택에서 시작되었지만 운명처럼 끝을 맺는 영화의 결말이 참으로 서글퍼졌다. 특히 큰 변화 후 이루어지는 분명의 순간이 참으로 비극적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의 일제강점기 상황에 한정되어 비슷하다고 소개되지만 각자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다른 부분이 있으니 이 점을 참고하여야 한다. 보리밭을 끊임없이 흔들던 바람은 멎었지만 꺾인 보리는 되돌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