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스파이어> 리뷰
로랑 캉테의 영화 <폭스파이어>는 1950년 미국, 모두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소녀들이 세상에 저항하며 ‘폭스파이어’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화로 현시대의 사회문제를 다뤄내고 있어 더욱 사실적이다. 언젠가 꺼질지라도 뜨겁게 행동하고 간절히 추구하라는 폭스파이어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발설하면 안 되는 비밀은 폭스파이어의 창립멤버이자, 일원이었던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작은 평범했던 그들이 왜 악을 위한 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까. 사회의 부조리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추구하는 진실은 그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다. 개인의 복수에서 시작한 어떤 응징은 거대한 불꽃을 일으키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들만의 혁명은 무언가에 대한 변화였으며 과거형 행복을 위한 추진력이 되었다. 조금씩 펼쳐내는 그들의 움직임은 과감했으며 당찼고 도전적이었다.
옳은 길은 하나고 틀린 길을 백만 개라서 세상이 뒤죽박죽인 거예요.
'여성'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혁명을 위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급진적인 태도는 장기적으로 추진력을 얻기엔 역부족이었으며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해주지는 못했다. 사회의 영향이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그저 '범죄'집단처럼 보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몇몇 활동을 제외하고는 죄 없는 시민들을 겁박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후반부의 내용은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어떤 경우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폭력이 선행된 행위는 어떤 단어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사자들이 아닌 사람들을 향한 분노는 그저 폭력에 불과했다. 정말 소녀들의 투쟁은 치기 어린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범죄인 걸까. 적어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그저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범죄처럼 보였다. 그들의 분노를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 소설을 꼭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 폭스파이어를 만들게 되었는지, 왜 행동에 나서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보여준 게 전부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어 살아가려 했으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갔지만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버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한 그들의 선택은 확정되지 않는 미성숙함이 맞물려 참혹함을 맞이했다. 의도와 결과는 늘 같을 수 없지만 어디를 향할지 모를 그들의 분노는 그저 형체만 남아 마지막을 그린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그들의 추구했던 진실의 불꽃이 이루고 있는 기억은 그 자리에 남아있다. '폭스파이어'라는 이름은 영원하지 않아도 그때만큼은 진실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