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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un 30. 2023

현실에는 미처 닿지 못하는 수많은 허구의 이야기.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리뷰


그의 상상력과 문학이 만난 새로움은 이런 모습인가 보다. 매번 영화를 선보일 때마다 화려한 영상미와 눈에 띄는 색감은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도 드러난다. 6월 28일 개봉한 이 영화는 웨스앤더슨의 11번째 장편영화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부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선을 긋는 영화의 설정부터 굉장히 독특하다. 연극처럼 펼쳐지지만 이어지는 장면들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처럼 여겨진다. 이야기로 이루어진 그 공간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 무한한 상상력으로 모두를 초대한다.



첫 번째, 애스터로이드 시티.

허구의 것들이 휘몰아치는 현실에 닿는 하나의 공간을 구성한다. 그 도시의 이름은 바로 '애스터로이드 시티'. 1950년 가상의 사막도시이자 매년 운석이 떨어진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그중에서도 전쟁 사진작가인 오기와 그해의 수상자 중 한 명인 우드로, 그리고 세 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소행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미지의 무언가를 보게 되고 그것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도시에 갇히게 된다. 의도치 않게 서로를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원래 그래야 했던 것처럼 '접촉'하게 된다. 어른은 어른들과 아이는 아이들과.



두 번째, 도시와 현재.

화려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애스터로이드 시티'와는 다르게 문만 열면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은 흑백으로 가득하다. 작위적인 만남이 아닌 '진실된' 어떤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의 분리와 동시에 벌어지는 일들은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어떤 상황이 되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화는 마치 삶처럼 이어진다. 마치 정해진 것처럼 흐르지만 예상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해서 우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이별은 각자가 감내해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말해준다. 전반에 어른들이 펼쳐내는 회의적인 모습은 화려한 색감과 더욱 대비되는 절망감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아이들이 펼쳐내는 성장의 이야기는 어른들에 비해 더욱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표현이 어른들과는 다르게 또 다른 시작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들이 만들어갈 도시와 현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그들의 이야기, 밋지 켐벨에 대한 궁금증.

문득, 그들 중 밋지 켐벨에 대한 이야기가 '애스터로이드'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밋지 켐벨'이라는 캐릭터와 이어지는 실제 배우의 내면이 자리 잡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따로 영화가 만들어져 이야기를 풀어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 밋지 켐벨은 충분히 멋있어 보이지만 내면의 고민이 그녀를 괴롭히곤 했다. 코미디 배우로서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예술 분야에서의 배우 활동을 큰 성공을 얻지 못했다. 그런 고민으로 이어져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물음표 투성이로 번져 나체를 보여주고도 진실되지 못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외로움의 결정체를 끝끝내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끝까지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도, 자신의 주소지를 남기지 못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몰라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이라는 것.

뭔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것들의 전개는 약간 지루하게 느껴지고 공감을 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씩 밀려들어오는 영화다. 관람할 당시에도 알 수 없는 용어들이 흘러갔지만 몰입감을 주었던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덧없어 보여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의미 없이 이뤄지는 이야기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잔뜩 묻어 나오는 것 같다. 예술의 허상과 그에 따른 본질은 누구에게도 얻을 수 없어서 미지의 무언가에게 바라지만 그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현실과 분리되는 영화의 설정은 한결로 이어지기 위해서이지만 뭔가가 어색한 이유는 이 연극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과의 괴리감을 위해서는 극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인간은 언제든지 문을 열고 나와 '행동'한다. 연극 속이라서 마음껏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조금씩 무너지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항상 묻고 의심했던 그가 망설임 없이 행동했던 이유는 해답을 자신에게서 얻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삶과 우리의 현실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미묘함이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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