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란> 리뷰
송중기 배우의 노개런티 출연작으로 알려진 영화 <화란>이 10월 11일 개봉했다. 김창훈 감독의 데뷔작으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큰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건조한 분위기의 누아르와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은 영화이다. 거칠고도 어두운 공간에서 이상적인 공간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려 발버둥 치지만 나아갈 수 없는 곳의 특징을 이용하여 어떤 결말로 나아갈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게 만든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집에서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연규. 그는 참다못해 자신을 괴롭히는 학생을 돌로 내리쳐 300만 원이라는 합의금이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방과 후에 중국집에서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연규에게는 벅찬 금액이었고 사장님에게 부탁해도 불가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조직폭력배 치건이 연규를 도와주지만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연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치건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토록 폭력에 진절머리가 났던 연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 뛰어들며 자신의 마지막 희망인 '화란'을 꿈꾸게 된다. 과연 연규는 그토록 바라던 화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는 점차 흉터가 옅어질수록 조직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참을 수 없었던 건 모순되게도 폭력이었다. 범죄가 만연하게 벌어지고 범범행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기 때문에 폭력이 일상이었던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과도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다. 은연중에 깔려 있는 감정은 죄책감으로 번져 선의를 베풀게 된다. 하지만 책임질 수 없는 선은 위선에 불과했다.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없었던 연규는 현실의 비정함을 몸소 깨닫게 된다. 선과 악의 경계선에 놓여 있었던 연규의 모습을 본 치건이 그를 이끌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돕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치 부자 사이처럼 점차 가까워진다.
책임진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도 지킨 것이 없는 연규의 모습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그 행동들이 불러오는 결과가 최악의 치닫는 설정 또한 그렇다. 영화 속 연규의 선택 중에 단 한 가지도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가정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일상의 폭력이 도사리는 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발버둥 칠수록 수렁에 빠진다는 말이 연규의 상황과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을 좇던 그를 끝끝내 무너뜨리며 절망의 기로에 놓이게 만들지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희건 덕분에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했던 그가 그 옷을 벗고 꿈에 그리던 화란으로 나아가며 영화는 막을 올린다. 과연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죽지 않은 채로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화란은 네덜란드의 한자음역어인 和蘭 화란을 뜻하기도 하지만 재앙과 난리를 뜻하기도 한다. 해당 영화의 영어식 이름이 Hopeless 이기 때문에, 후자의 의미에 가깝다고 본다. 특히 결말의 부분에서 결코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마지막의 대사가 그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도 같다. 연규의 시선은 학교 안의 모습보다는 학교 밖의 현실에 머물러 있다. 학교 안이나 밖이나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연규라는 등장인물을 평범하지만 눈에 불꽃이 튀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성격으로 설정한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세상에는 정말 무결한 인간이 없는 것을 그대로 표현한 장면들이었다.
분명 누아르 영화이지만 액션이 별로 없다는 점이 독특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특유의 건조하고 거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15세 관람가와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 영화의 잔혹성을 돋보이게 만든 것도 같다. 이 장면들이 다소 호불호를 갈리게 만드는 것 같은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나는 괜찮게 느껴진다. 다만, 이러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로 상영등급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거칠지만 서툰 연규의 모습은 잘 드러났지만 하얀의 존재에 대한 어중간함과 치건의 매력이 좀 덜 드러나는 경향이 있었다. 송중기 배우의 선한 얼굴과 범죄 조직 보스가 살짝 매치가 안 돼서 몰입감이 좀 떨어질 수 있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