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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Oct 26. 2023

사랑으로 메운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기억.

영화 <너와 나> 리뷰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너와 나>는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연출과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러 단편 영화를 통해 존재감 있는 연출력을 표현했던 것만큼 이번 영화 또한 기대가 됐다. 7년의 기획, 5년 간의 시나리오에 걸쳐 나온 만큼 상세한 묘사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은 영화였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에 상영되며 호평되었던 <너와 나>는 10월 25일 개봉했다.


예고편 ↓

https://www.youtube.com/watch?v=CT68pb1ptuY&pp=ygUK64SI7JmAIOuCmA%3D%3D



세미는 하은에 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다리를 다쳐 병원에 누워 있는 하은에게 간다. 그래서 세미는 병원에 입원한 하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수학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하은은 몸도 성치 않았고 형편도 여의치 않지만 세미와 함께 가고 싶었던 터라 캠코더를 팔아서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기로 한다. 그렇게 중고 사이트에 판매하는 글을 올리지만 막상 하은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함을 토로한다. 오늘이 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다툼으로 인해 건네지 못해 속상하기만 하다. 그리고 마음을 체념하듯 목놓아 <체념>을 부르다가 하은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곧장 달려 나간다.



보통이라는 사랑에 대하여.

누군가는 너무 지나치다고 느꼈던 그 마음은 사랑이 맞았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이들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듯 애틋하고 지나치면서도 끊임없는 관계성을 만든다. 사랑을 담은 마음은 말하지 않으면 상대가 알 수 없지만 세미는 내심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 마냥 서운하다. 무엇보다 하은의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훔바바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을 것 같은 하은의 마음을 알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는 불안감이 다툼으로 번진다. 다시 안 볼 것처럼 돌아서다가도 하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뛰어 나가고 둘만의 비밀이 어떤 것보다도 소중했던 세미의 마음은 바로 사랑이었다. 세미는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해하고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하은에게 건네며 마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조금씩 너와 나의 경계를 지우며 나보다 더 강한 '너와 나'의 힘을 보여준다. 사랑이란 건 그렇게 상실을 온전히 지우지는 못해도 사랑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멈춰버린 시간, 그럼에도 다가올 미래.

영화 속의 시간은 계속해서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지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세미와 하은의 하루는 길게 느껴진다. 수학여행 하루 전날 밤,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다가올 내일이 더욱 두렵게 여겨진다. 즐거운 상황과 대비되는 미래의 상황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죽음은 그러했다. 그때도 갑자기 찾아왔다. 거울 속에는 하은과 세미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존재하지 않아도 여기에 존재하는 흔적을 따라가면서 시간이 지나도 마치 생생한 꿈처럼 아른거린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이 꿈에서 이뤄지며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간다.



너라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나라는 기억.

사랑이 햇빛처럼 스며드는 순간은 우연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사랑은 오해와 갈등을 유발하며 제자리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으면서도 달랐던 '너와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끊임없이 낯설게 느껴지고 마음은 더 복잡했다. 네가 느끼는 고통은 지독하게 아팠는데, 내가 그 자리를 대체하니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는 너보다 너를 더 사랑했나 보다. 사랑으로 가득 메워도 모자랄 정도로 나의 마음과 기억은 너로 가득하다. 하루 전의 이야기인지, 이미 지나버린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의 흔적은 짙게만 느껴진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그 상황이 결국 코 앞에 나타나며 죽음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독한 어둠과도 같았던 죽음은 희미해지고 함께 했던 기억은 뚜렷하게 선명해졌다. 그 자리에 계속해서 머문 시간과 꿈의 이야기는 기억 속에 남아 '너와 '나'를 남긴다. ’ 너와 나‘는 분명히 개별적인 단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라는 단어로 명확해진다.



상실의 의연함과 사랑의 극복.

 영화는 재난에 의한 고통을 재현하지 않고도 상실을 잘 표현해 낸다.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세미와 하은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담담하게 전한다. 영화는 사랑을 통해 상실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위로를 건넨다. 나라는 개체와 타인의 경계, 나와 세상 사이의 경계, 객관적 실체에 대한 경계와 같은 것들이 희미해지길 바랐던 조현철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자칫하면 지나친 감정 호소에 매몰될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의연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기억을 더듬어간다. 그럼에도 섬세한 감정 묘사와 상실에 대한 표현은 촘촘하게 이어진다. 경계를 나눌 수 없는 죽음과 너와 나라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꿈과 현실이 뒤섞인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특히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적절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잘 맞물려 연출이 더욱 돋보이게 한다. 조현철 감독만의 색이 또렷하게 느껴졌던 <너와 나>는 독특했고 다음이 더욱 기대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의 애틋한 사랑의 풋풋함을 잘 표현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죽음이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때 그 안에서 날 꺼내준 건 ‘사랑’이었어요. 일상에서 우리가 몰랐던 사소한 사랑의 감정이요. 이를테면 단순하게 햇빛이 좋다던가, 잠을 잘 때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던가, 제게 사소하게 ‘잘 지내냐’고 물어봐주는 말들이 돌이켜보면 모두가 사랑이라고 느꼈어요. 7년 전 개인적인 사건으로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는데 그 허무해 보이는 상실에 대한 의미를 ‘사랑’으로 찾아보고 싶었어요.


감독 인터뷰 출처 : https://sports.khan.co.kr/entertainment/sk_index.html?art_id=202310240920003&sec_id=5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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