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년들> 리뷰
정지영 감독의 신작 영화 <소년들>은 11월 1일 개봉한 영화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가 담당한 재심 사건이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다룬 바 있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뿐 아니라 공권력의 과오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잊어서도 외면해서도 안 될 모두의 이야기는 어느샌가 잊고 있었던 보편적인 도덕의식과 정의감을 불태우게 만든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가 생각나는 날이다.
1999년 비 오는 밤, 삼례 우리 슈퍼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세명의 10대 소년들이 체포되었고 곧, 강도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형을 살게 된다. 반면, 전라북도에서 검거 성과가 뛰어난 황준철 형사는 완주 경찰서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된다. 어느 날, 그에게 제보전화가 들어오는데 바로 삼례 우리 슈퍼 강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에 수사 기록을 살펴보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며 본격적으로 재수사에 나선다. 이미 사건을 해결한 상황에서 재수사를 하려는 준철이 불편했던 최우성은 온갖 수로 방해하기 시작한다. 과연, 준철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소년들을 구해줄 수 있을까.
2016년, 정년 2년을 남겨 놓고 전주시로 발령 난 황준철은 한때 미친개라 불렸던 과거와는 달리 '이빨 빠진' 모습으로 바뀌었다. 30년 동안 근무 했음에도 15년 넘게 진급을 하지 못한 그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과거 사건의 진실이 이따금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16년 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의 딸이었던 미숙이 자신을 찾아와 소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며 준철을 찾아온다.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청춘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전에도 후에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끊임없이 발목을 잡힌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재심을 준비하는 이들을 도우며 그때는 밝히지 못했던 진실을 이제는 정말 밝히고 싶어졌다.
2000년과 2016년이 교차되어 황준철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황은 변하지만 본질적인 마음이 변하지 않는 모습은 끊임없이 그가 추구하는 진실의 형태가 어떤 모습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정의를 추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그가 속해 있는 공권력이 그의 앞을 막아선다. 소년들은 공권력의 희생양으로서 소년들은 경찰이 사건을 조작하고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해 만들어낸 범인이었다. 그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 생활을 한 소년들은 청년들이 되어 재심을 청구하게 된다. 사건을 밝히려 하는 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는 당당한 모습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로 인해 17년 뒤인 2016년, 최종 무죄를 확정받게 된다.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진실과 아무도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의 간극이 드러나는 부분인 만큼 주인공인 황준철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영화였다. 그 부분을 잘 표현해 준 설경구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그의 열의와 좌절감이 느껴지며 몰입감을 더한다. 영화적 연출은 전반까지는 묵직하고 담담해서 좋았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느슨해진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 보였지만 재판 장면에서 두드러지는 감정 과잉으로 인해 그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또한, 극적인 요소로 작용되어야 할 부분임에도 관객보다 영화가 먼저 나서서 울어버리는 상황이 그 부분을 저해한다. 말 그대로 과하다. 실화를 다룬 영화로서의 의미 묵직하지만 낡은 감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최소화하고 공권력의 피해자인 이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높이며 변명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과 무의미한 사과를 극 중에 담겨 있지 않는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