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슬립> 리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포함하여 3관왕을 한 영화 <빅슬립>은 11월 22일 개봉했다. 겨울의 분위기가 참 잘 어울리는 영화는 주인공인 기영의 무심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배우가 그 무심함을 잘 표현했기에 나올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불편함을 뛰어넘는 따뜻함은 모두를 감싸 안듯 포근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따뜻한 감성과 현실적인 시선이 잘 얼러진 것만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다.
길을 잃은 사람들.
한 소년은 길을 잃은 듯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곧 장면이 전환되고 한 남자가 잠이 덜 깬 눈으로 베란다로 나와 숨을 내쉬듯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그는 출근하는 길에 평상 위에 잠이 든 길훈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깨워 여러 가지를 묻곤 치워두고 가라며 자신이 갈 곳을 간다. 하지만 퇴근하는 길에도 그 자리 그대로 있는 소년을 보고 가라고 말하지만, 갈 곳이 없다는 말에 집에 들이게 된다. 무심하듯 소년을 챙기는 남자, 집으로 얼른 들어가라고 충고한다.
이제야 알게 된 사연.
그 충고에도 집 앞에 서 있는 소년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남자는 그 사연을 듣기 위해 추궁한다.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소년의 이름은 박길호, 새아빠의 가정폭력을 피해 바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잠깐이지만 자기 집에 머물게 해 주겠다는 말에 길호는 안도감을 얻은 듯 보였다. 다른 사람과 항상 거리를 두는 기영은 낯선 소년 길호와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며 집 안의 빈 곳을 채워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때의 그 사건이 평화로움을 무너뜨리고 만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길훈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거짓말과 허세 사이의 말은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게 했다. 그 편견은 나 자신을 부끄럽게도 만들었지만 곧 그 생각이 맞다는 듯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신뢰는 쌓기는 힘들지만, 한 번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물론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피치 못할 상황에 의한 것이겠지만 모든 상황이 의도에 따라 흘러가지 않는다. 정말 사소한 거짓말일 뿐이지만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행동에 의한 결과는 오로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특히 보통의 나이대 학생들과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의도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방황의 끝은 빨간 줄.
기나긴 방황을 마치고 이제야 정착하게 된 것인지 그는 여러 가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길호를 보며 어릴 때의 자신과 겹쳐 보여 더욱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미 그것을 경험했던 기영은 길호가 원래 공간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길훈의 거짓 속에 진실을 이제야 마주하게 된 기영은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과거의 자신이자 현재의 길호에게 “정신 차려”라고 외친다. 그들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면 그저 빨간 줄로 가득한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갈 곳이 없었던 길호는 방황했다. 그 방황은 계속되는 듯했지만, 마침내 기영이라는 그늘을 찾는다.
아이와 다르지 않은 어른.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서 살아남기 위해 길거리에 나온 길호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소일거리로 부족한 생활은 그들로 하여금 범죄의 길로 선도했다. 행동할수록 기록에 남는 범죄 생활은 그들에게 족쇄가 되고 그들을 보호해 줄 어른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회사의 사람들은 야근하면서 끊임없이 일을 한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불법적인 일을 자행했고 그에 가담하게 된다. 잘못된 일이 명백하지만, 자신의 고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했다. 죄책감을 계속해서 느끼며 괴로워하는 기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과오로 인해 일어난 일들은 자신의 삶을 소용돌이로 몰아치게 했지만, 어디에도 에도 잘못을 물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억울했고 새엄마라는 존재가 불편했다. 그래서 새엄마도, 기영도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이 벽을 허물지 못한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몸소 깨닫게 된다.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를 생채기로 가득한 서로를 상처 입히면서도 빈자리를 느끼는 모습은 ‘정’이 고팠다는 마음을 반증한다. 이전과는 다른 따뜻함을 느끼며 혼자가 아닌 둘을 꿈꾸게 된 두 사람은 늘 불안감에 곤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편안함을 느낀 그제야 깊은 잠이 든다. 상영시간 내내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며 따뜻함이 몰려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다. 폭력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길호를 보듬어 준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아빠처럼 무심한 다정함은 따스함으로 가득했다는 걸 나는 봤다.
물이 고여있으면 숨을 못 쉬어.
유난히 추운 겨울에 텅 빈 거리와 흐린 하늘은 그들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곳은 입구도 출구도 막혀 답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 어떻게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이 각박한 사회에서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영화의 마무리가 완전하지 않아 무의미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영화에서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어떤 삶이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다음 아침이 찾아와 둘을 따스하게 맞아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서로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