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절해고도> 리뷰
김미영 감독의 영화 <절해고도>는 2023년 9월 27일 개봉한 영화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부문에 초청되어 한국감독조합 메가박스상을 수상했다. 절해고도란 육지에서 멀어진 외로운 섬을 뜻한다. 영화의 제목과 똑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삶이라는 바다에서 유영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 보자.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영화의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 <절해고도>는 모두가 마주해야 할 우리의 이야기다.
윤철은 조각가였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테리어 일을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어느 날, 딸 지나의 학교에서 기괴하고 어두운 그림을 교실 곳곳에 그리는 지나의 행동에 부모인 윤철을 부른다. 지나의 행동을 문제 삼고 그림을 잠시 쉬지 않겠냐는 교사의 말에 오히려 존중해줘야 한다며 편을 들기까지 한다.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도 좁혀지면 좋겠건만 여전히 서먹하기만 두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윤철에게도 혼란이 찾아왔다.
그렇다. 딸 지나가 스님이 되기로 한 것이다. 어느샌가부터 엇나가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 지나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던 윤철은 지나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존중하기로 한다.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던 것만큼 지나는 자신의 길에 많은 혼란을 느끼는 모습에 왠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예술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종교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생각과 어쩜 그리도 닮아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혼란과 거듭된 절망은 자신이 버텨왔던 그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듯 무너지게 만들었고 삶의 의미도 잃어가는 듯 보였다. 소통이 서툴러서, 자신의 세계가 확고해서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윤철의 변화는 믿기지 않는 딸 지나의 출가에 의해서 시작된다. 모든 게 확고했지만 정착하지 못했던 그가 조금씩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나는 지난 과거의 자신을 뒤로하고 스님이 되었고 윤철의 경우에는 자신이 그렸던 미래를 지나가 따라가는 모습과 현재의 연인에게 받는 싸늘한 시선으로 삶을 포기하려 한다. 결국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나갔지만 이 사람들의 삶이 고독해서 유독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에게서 뻗어나가는 이 줄기는 본래 고독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현재의 모습에서 더 나은 자신을 변화시키 위해 과거의 자신을 사라지게 만들고 미래의 자신을 꿈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다음이 더욱 궁금해지는 구간이었다. 그들의 10년 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처럼 삶을 살아가고 또 이어간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지만 명확해진 무언가가 자신을 어디론가로 이끈다. 영화의 중점적인 인물인 지나와 윤철은 상당 부분 많이 닮아있었다. 나아가는 길은 다르지만 삶의 방식을 어떻게 마주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절망의 순간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우리의 삶에 놓인 미래는 선택과 의지에 따라 또 달라진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하고 어둡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나에게서 뻗어 나올 삶의 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영화 <절해고도>는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영화는 삶의 방황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영화의 담담한 시선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지도 않고 그저 잔잔하게 흘러간다. 윤철과 지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더욱 영화의 몰입감이 더해진 것 같다. 인물의 공통적인 내면적 갈등은 삶의 방황에서다. 삶의 방향과 선택은 오로지 자신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혼란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이들은 삶의 방황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간다. 어디로 갈지 모를 우리의 인생을 나열해서일까. 은근한 따스함이 밀려와 그 따스함이 마음에도 밀려 들어온다. 삶의 의미는 내면에서 찾는다는 것, 삶의 방향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삶의 방황은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가 내 마음을 울렸다.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영화 <절해고도>였다.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하늘에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기 마음의 별만 보고 길을 찾는 일이었다. 길을 잃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