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Dec 27. 2023

여전히 용서받지 못한 국가, 개인의 힘으론 부족한 용서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리뷰


나타샤 메르쿨로바 감독과 알렉세이 츄포브 감독의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2023년 8월 23일 개봉했다. 소련의 비밀경찰 NKVD 소속 볼코노프 대위가 탈출을 감행하고 피해자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1930년대 소련 사회의 스탈린 공포 정치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구원의 시작

소련의 비밀경찰 NKVD(엔카베데)의 볼코노고프 대위는 주변 동료들이 불려 가서 심문당하자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에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 나야에게 가지만 그녀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면서 갈길을 잃어버린다. 신분을 숨긴 채 부랑자들과 지내던 그는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친구의 환영을 보게 된다. 지옥과도 같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명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건물에 다시 들어가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기밀문서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리곤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찾아가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쉽게 용서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어려움은 그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 사이 비밀경찰 NKVD이 그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NKVD는 소련의 내무인민위원부로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존재했던 치안기관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치안과 행정이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았으며 방첩 업무를 직접 실행한 중추기관이다.




의심의 시대,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레닌그라드의 당서기인 세르게이 키로프 암살 사건을 발단으로 소련 형법 제58조를 내세워 반혁명분자 색출을 명분으로 대숙청에 나선다. 스탈린의 통치체제를 위협할 소지가 있는 모든 개인과 집단이 그 대상이었고 개중에 의심할 여지가 있거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숙청의 대상이었다. 대숙청에 앞장선 비밀경찰 엔카베데(NKVD)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허위자백을 유도하는 일을 해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숙청을 당해 삶을 뺏겼고 그들의 가족은 희망도 잃은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은 영원하지 않았으며 점차 NKVD에게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 시대에서 볼코노고프 대위는 탈출할 수 있을까?



상승이라 믿었지만 추락

NKVD 내부에 심문이 이뤄지면서 압박을 받은 그보즈데프 소령은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되고 그에 따라 진급을 하게 된 골로프냐 소령은 승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임무를 받게 된다. 바깥의 사람뿐만 아니라 내부의 사람들도 정리하면서 모든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임무를 받게 된 것이었다. 분명히 승진임에도 불구하고 책임과 구실을 만들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병에 걸리게 되면서 그는 더욱 무의미한 듯 보였지만 국가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의 모습과 결과는 이토록 달랐다.



오만해진 사람들과 공포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 당시 NKVD이 지목하면 신분에 상관없이 재판 없이 끌려가 고문/처형과 같은 즉결 처분을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결백 여부와는 다르게 인민에게 누명을 씌워 진실을 조작하고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거대한 권력이 있는 만큼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은 곧 영원하지 않은 권력의 힘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에게도 구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세상은 이미 열렸고 그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을 지옥은 현실에 존재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포에 익숙해졌으며 두려움의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었다.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은 다시 시작됐지만 고통은 쉬이 치유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암울하지만 묵직한 일갈.

무감각해질 정도로 격해지는 폭력과 곳곳에 즐비하는 시체는 지금의 시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듯 담담하다. 가해자를 위한 천국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며 묵직하게 일침을 날린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혹할 뿐이다. 영화는 암울한 시대에서 사죄를 통해 구원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분명 남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그의 의도와 목적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멀어지며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강조된다. 기존의 삶에서 이유 없이 밀려나야 했던 사람들은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상을 빼앗겼고 국가에 복종하거나 동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의심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으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행동 또한 이해가 갔다. 영화를 보면서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는데,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삶을 위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작은 양심이 불러온 사죄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일말의 반성도 사죄도 없는 그들에게 이렇게라도 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남자는 진정한 사죄가 아닌 천국을 가기 위해 사죄를 하러 다녔지만 자신이 살아왔던 세상이 아닌 그동안 감시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사죄하는 과정을 겪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양가의 감정이 생기겨 묘한 기분을 느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