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덟 개의 산> 리뷰
샤를로트 반더히르미, 펠릭스 반 그뢰닝엔 감독의 여덟 개의 산은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으며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피올로 코녜티 작가의 장편소설 <여덟 개의 산>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며 2023년 9월 20일 개봉했다. 아름다운 영상과 잔잔한 이야기 전개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어떤 계절에 봐도 좋은 영화지만 새해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영화라 추천하고 싶다.
만남의 시작.
피에트로는 도시 토리노를 떠나 가족과 함께 매년 여름 알프스 산속 마을 그라나에서 지내곤 했다.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아이인 브루노와 만나 산을 누비며 우정을 쌓아간다. 피에트로의 부모는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브루노를 안타까워하며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해서라도 학교에 입학하길 바랐다. 반면, 피에트로는 도시가 익숙했지만 그 고단함의 무게를 브루노가 느끼지 않길 바랐던 터라 브루노의 진학을 반대한다. 늘 떠나고 싶어 했던 브루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가지 못하게 되고 노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다른 길을 건너는 두 사람의 관계 또한 끝나는 듯 보였다.
산이 전부인 사람들.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브루노는 그라나에 뿌리를 내리고 결혼해 가정도 이루지만, 피에트로는 방황을 멈추지 못하고 혼자 살아간다. 그들은 어쩌면 이렇게 달라 보이지만 과거에서 여전히 도망치는 것 같았다. 항상 떠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가정에 소홀한 그 모습이 여전히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집을 나갔던 피에트로와는 달리 떠나고 싶다면서도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브루노는 피에트로와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라나로 돌아왔던 피에트로가 그들 사이의 긴밀한 유대감을 마주하며 갖게 되는 서운함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이 바라던 삶의 모습이 서로의 현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계절 동안 품어온 추억을 공유하듯 산을 공유한다.
우정과 재회.
자연스럽게 멀어진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피에트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재회하게 되고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이어간다. 멈췄던 시간이 흐르듯 둘 사이의 정적도 잠시 피에트로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셋이 묵었던 별장 터에 집을 새로 짓기로 한다.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벌어진 세월만큼이나 달랐지만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산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살아생전에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아빠는 빙하를 산이 우릴 위해 간직한 과거 겨울의 기억이라고 했다.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당찬.
영화는 산을 배경으로 두 주인공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우정을 40년에 걸쳐 그려낸다. 눈이 쌓여 녹아내리고 새파란 잎이 올라오듯 그들의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간다. 가파르게 오르는 산맥처럼 인생 또한 그런 모습인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쓸쓸해졌다. 그래서 더 깊게 와닿는 이 허무함의 끝은 갈길을 잃었지만 어떤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마다의 인생 속에서의 의미를 찾는다. 여덟 개의 산을 헤매지만 저마다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어떤 것을 통해 각자의 산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산은 마음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계절을 거치고 나서 발견하는 산과 같은 마음을 마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면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책을 감상해 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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