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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an 11. 2024

그들의 이름을 담아 만들어낸 아름다운 언어 수업.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리뷰


바딤 피얼먼 감독의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은 1942년 프랑스 나치 강제 수용소를 배경으로, 유대인으로 위장한 질과 독일군 장교 코흐가 가짜 페르시아어를 통해 서로의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사상을 넘어서는 언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뤘다. 6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황금곰상 수상작이며 2022년 12월 15일 개봉한 작품이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언어의 힘.


1942년 겨울,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북부. 집결수용소로 체포된 유대인들이 타고 있는 트럭 안에서 질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배고픔을 호소하며 자신이 가진 페르시아어 책과 샌드위치를 바꾸자고 말했고 가치가 높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잠시 후 트럭이 숲에 멈춰 그들을 강제로 내리고 빈 공터에 끌려가 학살을 당한다. 그리고 질은 살아남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했다. 독일 군인들은 그가 꾀를 부린다며 처형하려 했으나 그중 한 군인이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인을 찾는다는 소식을 기억해 냈고 질을 살려서 데려간다. 수용소 주방과 명부를 관리하는 전직 요리사 코흐 대위는 이 전쟁이 끝나면 동생이 사는 페르시아로 이주해 독일음식 식당을 차리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었던 터라 질을 의심하면서도 수업을 받기로 했다. 과연 질은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글의 재창조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일까?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매개체일까? 영화는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질과 코흐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서로만이 알고 있는 언어를 통해 교감하게 된다. 일방적이었을지도 모를 우정과 친절을 이념과 상관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주방에서 하루종일 일하면서 매일 4개의 단어를 창조하고 동시에 가르쳐야 했던 질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루에 4개가 작다면 작지만 쌓이다 보면 정말 무수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재창조에 그치지 않고 그 단어를 외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급기야 그는 잠꼬대에서도 '가짜' 페르시아어로 하게 될 정도였다. 그 결과 코흐 대위의 신뢰를 얻었지만 여전히 들킬지 모를 불안 앞에 놓이게 된다.



2840명의 사람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언어.


기록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지워져 간다. 나치에 의해 소실되어 가는 역사의 기록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모두 지우지 못한 다른 이들에 의해 다시 사람들의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물론 영화에서 다루는 부분이 실제 역사와 다르지만 절대 왜곡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레자가 2840명의 유대인들의 성과 이름을 조합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고, 그 언어를 통해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그리고 그 언어는 코흐 앞에서는 페르시아어가 되어 질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언어 곳곳에 새겨 놓은 희망의 불씨는 인간다움을 돌려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전쟁의 참혹함과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화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감정적으로 깊이 있으며, 연출은 긴장감과 몰입감을 잘 살려낸다. 또한, 음악과 영상은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인 요소의 조화로운 구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연출의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영화이다. 또한, 영화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잔혹함의 실체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한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불안감 속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수용소 또한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현재에서 과거의 모습을 보면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함을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쭈뼛선다. 어떻게 이어질지 몰라 더욱 불안해지는 이 감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진다. 가짜 페르시아어가 정말 가짜라는 것이 들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감히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다. 전쟁이 끝나며 변화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것도 관점 포인트 중 하나이다. 둘의 우정에 빠져들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괴성을 지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만, 허구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여 더욱 깊이 있는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면서, 전쟁과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전쟁의 끝은 희망을 가져다주지만, 그 희망을 얻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상처는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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