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그맨> 리뷰.
뤽 베송 감독의 <도그맨>은 2024년 1월 24일에 개봉한 액션 드라마 영화이다. 5살 아이를 4년 간 개와 함께 우리에 가둔 채로 키운 한 가족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주인공 더글라스의 내면에 숨겨진 고통과 슬픔을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감정표현을 통해 더욱 몰입감 있게 전달된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한밤 중, 수십 마리의 개를 트럭에 태운 채 이동 중이던 여장 남자가 긴급체포 된다. 어떠한 진술도 하지 않던 그는 정신과 의사가 사연을 묻자 15년 간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더글라스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자 투견을 기르던 사육장에 그를 방치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탈출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생활하던 소년은 사육장 안에서 세상을 배웠다. 비록 좁은 세상이지만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했던 것을 습득하고 개들과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개의 도움으로 경찰에 구조됐지만 아버지가 쏜 총탄에 의해 척추가 손상되어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잇따른 절망 속에서도 늘 그의 옆에 있어준 것은 다름 아닌 개였다. 끔찍한 과거는 끝이 났지만 그의 앞에는 불합리한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는 끝났지만 여전히 이어진 상처는 여전히 현재와 연결되어 있었다. 걸을 수 없는 그는 사회에서 '가치'가 없었으며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다 개들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배신감과 허무함은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가 겪어온 세상의 인간관계는 불행이 전부였으며 단 한 번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불행 속 유일한 구원이었던 개들은 꾸며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주었다. 배신도, 불행도 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단어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삶을 개에 맞춰 살아가며 그들에게 대한 감사함을 표하고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 유년기에 사랑을 받지 못했던 더글라스는 개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게 되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의 체포와 동시에 에블린에게 전화가 울린다. 경찰에서는 그의 현재 상태를 진단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밤 중에 의사를 부르게 되었고 그 의사가 바로 에블린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자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더글라스. 그녀는 사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을 했고 남편은 이미 접근금지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에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지만 평생을 불행에 갇혀 산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모를 감정이 전해져 왔다.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에블린과 더글라스를 연결해 주는 감정이었다. 마지막에 펼쳐진 그 장면은 평생의 불행에 갇혀 살아왔지만 또 다른 이를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러났고 또 다른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가 분장을 한 이유는 일자리를 찾을 때, 그를 유일하게 받아준 곳이 카바레였다. 물론 자신을 지우고 다른 사람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점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이 설정은 그의 과거와도 연결된다. 더글라스는 12살에 경찰로부터 구출되고 보육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연극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겉돌던 더글라스는 선생님을 통해 셰익스피어와 연극을 알게 되었고 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것도 잠시 선생님이 떠나게 되면서 그 행복한 시간도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 후에 자신을 유일하게 받아주었던 카바레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완벽하게 지울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는 분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연극이라는 것이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던 불행이었지만 희망을 꿈꾸는 행복으로 연결되는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인 더글라스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으로 표현한다. 장애인, 예술가, 그리고 드래그 퀸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다. 더글라스의 불행 유년 시절을 마주하고 본 그는 분노가 잠재된 사람처럼 보였다. 영화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사회적 시선으로도, 개인적 시선으로도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선입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혹은 많은 사람을 겪었기 때문에 나오는 '데이터'인 걸까. 어떤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생각들이 흘러넘친다. 결과론적인 그의 발자취를 보았을 때, 더더욱 편견의 시선은 두터워진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 아래 저지르는 죄악의 크기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가정환경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능력에 의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오만이라고 해야 할까. 완전한 도덕적 결백이 존재할 수는 없지만 그가 혐오한 인간의 모습이 은연중에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스스로도 혐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 조커를 생각했다면 좀 아쉽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사회적 소외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영화가 추구하는 주제로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영화 <조커>는 인물의 내면에 중점을 두는 반면, 영화 <도그맨>은 주인공인 더글라스와 개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전체적인 전개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이야기인 '더글라스와-개' 구원 서사가 밋밋해서 특별히 감동적이지 않았다. '와!'하고 펼쳐지는 것보다 영화적 요소로 인해 해결되는 부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무리가 뚜렷하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블린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하게 표현했다면 에블린과 더글라스가 다시 연결되는 부분이 더욱 감동적이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