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의 풍경> 리뷰.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결혼의 풍경>은 제3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영화상을 수상한 영화이다. 1973년 6부작 TV 미니시리즈로 기획되었지만 1년 뒤 극장판으로 압축해 전 세계에서 상영되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결혼생활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현대의 결혼과 가족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이 작품에 담겨 있어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영화의 캐릭터와 이야기에 반영되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이한 두 부부는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어 가족과 자신,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들은 전혀 엮이지 않을 것 같을 것 같은 사이었지만 외로움으로 서로를 감싸 안아 함께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는 행복하다는 말을 하며 서로에 대한 만족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친구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친구 부부의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은 아무 문제없는 '부부'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던 마리안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요한에게 여자가 생겼고 그녀와 함께 하고 싶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결혼 생활이 늘 즐거울 수 있을까? 결혼의 풍경은 즐겁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한 장면에 불과하다. 결혼 생활이란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여 맞춰나가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결혼 생활을 잘 살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사이가 좋아하는 부부라도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도 각기 다른 속마음으로 다른 배려를 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무언가로 인해 '이별'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처럼 결혼의 풍경은 그저 일어나는 한 장면을 이어 붙인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도 없다. 아마 어떤 누군가와의 일상을 꿈꾸더라도 똑같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풍경은 완벽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재되어 있는 갈등과 불안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평소, 그들이 자부심을 여겼던 부부 사이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격앙된 마음이 표면에 드러나며 누군가의 불편한 기색에 의해 문제가 부각된다. 빛이 갑자기 새어 들어오면 인상을 쓰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 순서가 있는 법이다. 부부는 어떠한 언급도 자세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던 터라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사소한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갈등 해소나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닌 지금 상황을 모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요한과 마리안은 성격도 다를뿐더러 사랑을 추구하는 방법 또한 달랐다.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마리안과는 다르게 육체적인 사랑 또한 중요하다 여기는 요한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리안에게 있어서 요한의 고백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욕구가 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오히려 더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의 무게를 견뎌내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오히려 그들이 격하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 이후 다시 만나 편안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감정의 찌꺼기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조금씩 걸러지고 본질을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 이후에는 조금 다른 것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았다. 사랑하지 않아서 결혼의 풍경이 무너진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없지만 일상의 따분함 혹은 진부함을 이겨내고 지금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결혼의 풍경을 꾸릴 수는 있다. 끝내는 서로를 담은 눈동자보다 사랑하는 이의 등을 바라볼 때, 서로에 대한 깊은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 다만, 무수히 깨진 조각들은 다시 붙이려 애써도 소용이 없다. 붙을리 없으니까.
요한의 외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 것과도 같아서 그를 '배려'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바라는 일을 행하는 일이 과연 이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는 아니다. 그건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결코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에 대해 알고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일에 대해 모색할 수 있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배려가 진정한 배려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그것은 절대 배려라고 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영화 <결혼의 풍경>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이 영화는 결혼 생활의 긴장과 갈등을 미묘하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공감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마리안과 요한, 그리고 그들의 결혼 생활을 중심으로 한 이 이야기는 결혼의 진정한 본질과 그 안에 내재된 복잡성을 탐구한다. 영화는 단순한 해체된 결혼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상처를 깊이 있게 다루어, 많은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영화는 제삼자의 개입 없이 오로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부부 싸움 중 가장 격렬하고 폭력적인 부분이 가장 지켜보기 힘들어서 제발 그들이 깨지길 바랐는데, 봉합되는 부분을 보면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인 걸까?
영화 <사라방드>가 이 작품의 3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디앨런의 부부일기,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미드나잇,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러브리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 등의 작품이 이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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