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튼 아카데미> 리뷰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폴 지아마티의 20년 만에 재회하여 선보이는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2024년 2월 21일 개봉했다. 골든 글로브 작품상 및 각본상 수상 등의 영광을 안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는 작품이다.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로 이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
1970년 명문 사립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대부분 학생이 집으로 돌아가 텅텅 빈 곳이 된다. 각자의 사정으로 방학을 기숙사에서 보내야 하는 학생들이 생겼고 그들을 관리할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융통성 없는 역사 교사, 폴. 학기 마지막 날까지 학생들에게 낙제 폭탄을 던지고 수업을 진행할 만큼 악명이 높은 존재였다. 학기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불만도 점차 커지는데, 우연한 기회로 앵거스 털리를 제외한 학생들이 떠나면서 폴, 메리, 앵거스만이 바튼 아카데미에 남는다. 남겨진 이들은 무사히 크리스마스 방학을 보낼 수 있을까?
앵거스는 버려졌다는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뱉으면 인정하는 것 같아 삐뚠 말로 자신의 감정을 뭉뚱그려 표현한다. 그 사정을 모르는 폴에게는 앵거스의 행동이 매우 거슬렸고 찍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앵거스 또한 융통성 없고 냉정한 폴과 함께 지내는 건 정말 끔찍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함께 지내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폴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의외의 면을 발견하며 더욱 가까워진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버려졌던 앵거스는 정말 의외의 사람과 함께 하며 함께 있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가족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저녁 식사와 함께 버려졌다는 감정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픔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물론 그 감정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혼자서 헤쳐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적인 문제처럼 쉽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방법을 몰랐을 뿐, 마음은 서서히 치유하는 것이다.
앙트레 루
모두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혼란과 갈등으로 이어가는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보는 내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보는 것처럼 불안감이 커진다. 특히 사람들은 겉모습이나 행동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유추하여 판단하고 말하며 또 행동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연이 있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사연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나,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평소 폴은 냉정하고 융통성 없는 모습으로 인해 동료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통성을 지키는 것에 중점을 맞춰 누구에게나 높은 기준을 세웠고 그 기준을 넘지 못하면 구제불능으로 판단하여 만회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가장 불량하게 여겼던 앵거스와 함께 지내며 공통점을 발견하고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타의에 의해 혼자가 된 사람이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며 홀로 설 수 있게 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는 말처럼 자신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역사를 마주하고 현재로 나아간다.
사실 영화는 단맛보다 쓴맛이 더 돋보여서인지 여운이 짙게 남는다. 그게 현실의 무게인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적절한 결말을 찾은 것 같다. 폴에게 그 일은 오히려 전환점으로 다가온 것 같아서 뒷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따름이다. 현실의 무게와 가상의 이야기가 맞닿아 환상의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형태가 참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사람들의 좋은 부분, 못난 부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평가하기보다는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자신의 진심보다 서툰 마음들이 튀어나와 행동했던 초반과는 다르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바꿔 가는 모습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깨달아가는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게 잘 꾸며냈다.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정서적 교감은 자연스럽고 세심하게 신뢰의 마음을 쌓아간다. 문제를 즉시 해결하는 방법보다 시간을 들여 조금씩 치유하는 방식을 택하여 이들이 '연대'할 수 있게 만든다.
고전 영화의 느낌이 나면서 현대 영화의 모습으로 잘 풀어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이 영화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바로, <바튼 아카데미>. 그래서인지 <바튼 아카데미>는 관람 초반과 후반의 인상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영화이다. 초반에는 쓸쓸함과 고독이 강조되지만, 이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희망과 따뜻함이 스며들면서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들의 상처와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그들을 사랑스럽게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각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연기와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려낸 감독의 연출력으로 인해 더욱 감정적 공감을 일으킨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아도 이토록 한 인물에 대해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은 모든 인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앵거스 털리와 항상 다투었던 테디 쿤츠와 박예준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영화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다만, 세 인물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꼭 들어보고 싶다. 쿤츠로 인해 장갑을 잃어버렸던 알렉스의 장갑 이야기도 다루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는 사람 간의 이해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더 큰 연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공감과 이해를 통해 공백을 채워가며, 독립적인 존재에서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자리 잡은 고립과 냉담함을 극복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욕망을 다뤄낸 것이다. 영화는 개인적인 삶의 고난과 함께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가 사람들 사이에 멀어진 공백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여백을 채워 나가며 '독립적 인격체'로 거듭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홀로 해나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에서 홀로서기로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함께하는 방법을 배운다.
세상은 쇠퇴하고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