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르소나> 리뷰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페르소나>는 1966년에 공개된 영화이다. 타임지에서 발표한 역대 최고의 100대 영화 리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심리적 이면을 탐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의 연출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 감정과 상상력을 영화로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한, 역동적인 시네마토그래피와 탁월한 연출력을 통해 더욱 영화의 예술적 면모가 돋보인다. 연극주의 영화에서 벗어난 시대에서 탄생해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극배우 엘리자베트는 연극 ‘엘렉트라’를 공연하던 중 갑자기 말을 잃게 된다. 신경쇠약으로 병원을 거쳐 요양을 떠나게 되면서 간호사 알마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알마는 간호사로서의 친절과 인간적인 호감과 동경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에게 자신의 심리적인 고통과 갈등을 털어놓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침묵을 지키며 말없이 듣기만 하는 엘리자자베스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끼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또한, 엘리자벳의 남편이 방문한 후, 마치 엘리자벳이 된 듯 그녀의 인격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된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페르소나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지만 대표적으로는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다. 사회 역할이나 배우에 의해 연기되는 등장인물로서, 연극에서 쓰이는 탈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개인이 사회생활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가면으로서 자신의 본성과는 다른 태도나 성격.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내면화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계에서는 감독이 자신이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배우를 말한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 페르소나는 영화 속에서 한 사람을 비추며 그 상세한 설명을 펼쳐낸다.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개인의 모습과 자신의 내면의 괴리감을 적절하게 표현하여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른 자아를 통해 본래 나의 모습과 다른 또 다른 자신이 있다고 표현한다. 마치 이중생활을 하듯이.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는 같은 인물일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에게 옮기는 순간 벌어지는 이상한 일은 극강의 허무주의로 번져갈 수 있는 문제이며 울퉁불퉁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사회적 가면으로 자신 본연의 모습을 숨길 수 있으며 그 가면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지 부조화로 이어지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자기 자신과의 적절한 합의로 인해 자기 합리화 또한 가능한 것이다. 평가는 타인에게 쉽지만 자신에게 어려운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기 고백을 이어간다면 보다 더 나은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완으로서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겠지만 그것을 채워가겠다는 생각으로 여백을 채워나간다면 나의 삶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는 한 사람 안의 여러 가지 모습을 두 사람을 통해 내면을 표현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덮어버린 채 내면적인 탐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알마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외부에 표출하며 자신을 정의하려고 한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페르소나와 본질 간의 갈등을 보여주며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가 침묵을 유지하는 반면, 알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뱉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생각(알마)은 여백 없이 계속 말을 이어가지만 외면(엘리자베스)은 최소한의 말을 한다. 내면의 상처를 담고 있는 한 사람은 그토록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마로서 자신의 아픔을 털어내고 오로지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싶었던 엘리자베스는 그 미약함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내 존재감이 사라지며 연기에 뒤덮인 듯 희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달랐던 두 사람은 비극 속의 희극처럼 다시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물론 처음부터 알마가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알마의 무의식적인 고백은 내면의 불안이 극대화되어 분노,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부분은 자기혐오라고도 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말로써 내뱉고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점차 해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더 발전한 모습으로 자신을 채워갔고 엘리자베스를 흡수한다.
<페르소나>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언어와 침묵, 내면과 외면의 상호작용을 중점적으로 다뤄낸다. 비유적 표현을 근간으로 하여 작품 내에서 사용된 상징과 메타포는 여러 해석을 허용하여 관객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심리 드라마로서 접근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어 더욱 폭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영화는 두 명의 배우로 구성되어 있지만 꽉 찬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사와 침묵을 통해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해서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충분히 해석 가능하게 '힌트'를 준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들은 서로 다른 자아와 모순된 욕망을 표현하고 내면적인 충돌을 펼쳐낸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섬세한 감정 표현과 화면 구성으로 좀 더 감정적인 몰입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 중 엘렉트라는 연극으로서 등장하지만 실제 일렉트라 신화가 영화에 반영된 것일까. 일렉트라 콤플렉스는 여성이 모친을 증오하고 자신의 부친에게 성적 애착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영화 속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대비되는 자신 본연의 모습의 충돌에서 오는 괴리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