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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r 26. 2024

합법이라는 이름 하에 이뤄지는 사회적 살인.

영화 <플랜 75> 리뷰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 75>는 2024년 2월 7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제75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받아 황금카메라 특별 언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옴니버스 영화 <10년>에 포함되었던 단편이 장편으로 탈바꿈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와 노인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드러내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사회 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더 이상 회피할 곳 없는 고령화 사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요나라, 할 수 없는 노인의 미래.


고령화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노인 혐오 범죄가 빗발치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국가에서는 '플랜 75'라는 특별 정책을 내놓았다. 75세 이상의 나이가 되면 국가가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일부 반발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통과되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모습이었다. 죽음 동의서를 작성하면 10만 엔을 지급하고 안락사와 화장장도 무료 제공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일본의 한 호텔에서 일을 하는 78세 할머니 미치 또한, 플랜 75라는 정책을 알게 되었고 그 서비스를 신청하게 된다.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한 정책 플랜 75는 성공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존엄한 죽음인가, 사회적 살인인가?


정확히 밝힐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살인이다. 사회적 분위기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게 조성되었고 정부는 동조하였으며 개인은 그를 따랐다. 합법적인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무자비한 인간성의 결정체를 목도한 순간이다. 이 방법은 경제적 손실 없이 효율적이게 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비윤리적 행태일 뿐이다. 플랜 75라는 정책을 시행하여 적극적으로 권장할 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변심하지 않도록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한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효율성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통해 이제는 플랜 65로 더 나아가는 모습은 참혹하기까지 했다. 한때, 사회구성원으로서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이렇게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윤리적 딜레마는 모두가 느껴야 할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의견은 소극적인 항의처럼 비친다. 이들이 왜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지만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봤을 때, 다수의 의견으로 자리 잡은 경제 생산 효용성의 정책을 반박할 수 없게끔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윤리성을 적극적으로 항의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은 이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다수가 동의하는 의견이라면 그게 맞는 것처럼 여겨지는 SNS의 행태가 사회에 그대로 옮겨진다면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플랜 75, 태어날 때 계획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죽을 때는 계획해서 죽을 수 있게 돕는 하나의 정책이다. 75세가 되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표방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벼랑 끝에 놓인 노인들이 비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며 죽음 선택하게 된 것을 보면 노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주 복지대상이 되는 노인을 그저 간편하게 이 사회에서 치울 뿐이었다. 영화의 중간에는 '플랜 75' 정책을 3년 시행 후 1조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였으며 10년에 걸쳐 65세까지 넓힐 예정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는 과연 노인을 위한 정책일까. 생명에 대한 윤리 의식보다 생산의 효용성을 중요시 여겨 일정 연령의 사람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은연중에 벌어지고 있는 노인혐오와 작은 의식들이 모여 '플랜 75'라는 정책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끔찍하다. 정책의 그릇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평화를 마주할 수 있을까. 친절함은 무관심이라는 가면에 가려졌지만 불편한 진실은 문제의 본질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성의 희미한 빛을 찾아서.


영화는 할머니 미치, 플랜 75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무원 히로무, 콜센터 상담 직원 요코, 신청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노동자 마리아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인의 삶과 '플랜 75'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렸지만 영화에서는 담담하게 표현하여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모습을 비추고 있다. 어쩌면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를 이 일들은 정말 현실과 맞닿아 있는 문제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좁은 의미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지 못한 미래, 노인에 대한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이의 제약으로 인해 집, 일자리에도 제약이 생기며 비생산 인구로서 존재하는 복지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비자발적인 죽음이라는 선택에 이르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비참하다는 말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실제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0년 기준 15.7%를 기록했고 2050년에는 40%를 초과할 전망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는 노동 생산 인구가 줄어들어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경제 성장 둔화 현상이 일어나고 노인 복지비 증가와 노인 부양에 대한 재정적 부담이 증가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어 풀기 힘든 숙제와도 같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장수가 더 이상은 고귀한 일이 아니게 된 지금 고령화에 대한 생각에 직면하여 적극적인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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