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춘스케치> 리뷰
벤 스틸러 감독의 청춘 로맨스 영화 <청춘 스케치>는 청년들이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994년에 개봉한 지 30년이 지난 후, 드디어 2024년에 한국의 극장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현실에게 물어 뜯긴 청춘들에게 어떤 말보다 더 명확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이다. 지금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졸업 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 4명의 친구는 자신의 꿈과 포부를 밝힌다. 꿈을 펼치기 위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며 그 과정을 장면에 담는 리레이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사회에 나갔지만, 이상과는 전혀 다른 냉혹한 현실에 부딪힌다. 진행자의 뒤치다꺼리와 온갖 잡무에 매진해야 했고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도 참아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 와중에, 신문 가판대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트로이가 해고되며 리레이의 집에 함께 살게 된다. 이어 식구들과 불화를 겪는 새미, 방송국에서 해고가 된 리레이는 힘든 시기를 맞게 된다. 과연 이들은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비슷한 과정을 밟았지만, 삶의 노선은 대학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달라진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립하고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생각과 다른 냉혹함에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현실과 기대와는 다른 일을 하는 현실이 갑갑하게 여겨졌다.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분명히 있었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이전과는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4명의 친구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하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리레이를 중심으로 한 친구들의 관계와 그에 대한 감정 묘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나름의 철학과 흔들리지 않을 듯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도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며 조금씩 드러나는 삶의 가치관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갈등을 맞기도 했다. 자신의 어려움 앞에 드러나는 본연의 모습은 분명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대화를 통해 충분히 풀어갈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했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가 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랑은 영화의 일부이며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지금의 가치관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하나의 감정이다. 그래서 감정 소모로 인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버거울지 모를 그대에게 사랑이라는 설렘을 끼얹어주고 싶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도 힘든 현실 앞에서도 사랑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 모습을 보여준다. 순수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조건도 맞추지 않은 모습으로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사랑의 방향을 정한다. 가벼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따금 진심을 내보이며 "내 어깨를 후회의 행성이 눌러"라는 말을 쓰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정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위해주는 것은 트로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맞는 것도 같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청춘의 일부로서 마음을 맞추고 삶을 살아가는 일부가 된다는 것은 틀림없다.
삶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극명한 차이를 두고 있었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해진 시스템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한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었다.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리레이도 그랬으며 그런 리레이에게 트로이는 "네가 스물세 살까지 되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라고 말해준다. 어느새 현실이라는 문제 앞에 '나'의 존재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대사였다.
난 23살이 되면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네가 23살까지 되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
이렇게 사회의 냉혹함 앞에 내가 설 자리가 하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이 영화의 낭만을 떠올려보자. 낭만은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영화의 위로가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함을 느꼈다면 삶이라는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채워가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 중 일부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 낭만을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원료에 불어넣어 보는 거다. 작은 것 하나에 소중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트로이처럼 한 번 해보는 거다. 지금, 이 순간도 삶의 극히 일부이며 청춘은 앞으로의 삶을 위한 양분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기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뚜렷한 답이 내려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 영화처럼 우리의 답을 만들어가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들이 그려내는 청춘 스케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청춘들이 겪는 사랑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단어에서 파생되는 낭만을 희망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지만, 젊음이라는 특권으로 세상에서 도전장을 내미는 그런 흔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어디든지 파고들 수 있는 '틈' 하나쯤은 있다고 조마조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북돋아 준다. 하루하루 그렇게 버텨내다 보면 답이 보일 거라고 말하는 영화이다.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다 현실적이며 내면의 불안과 혼돈으로 인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으로 한동안 멈춰있는 모습으로 비추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는 배고프면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이 상황마저도 그저 낭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망과 무기력함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관점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영화 속에서도 리레이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으면서 다시 자신만의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시간이 사치처럼 여겨지고 현실은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내면을 방치해 두었을 때, 체감되지 않는 그 무기력함은 상상 이상의 절망을 불러온다. 방치해 둔 과거의 결과가 삶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는 것을 안다면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 솔직한 감정을 감추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