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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y 30. 2024

짙은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아침에는 해가 뜨니까.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리뷰


나와는 다른 속도로 나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괜히 죄책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괜스레 위로가 되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2024년 5월 29일 개봉한 영화다. 사소하고도 우연한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공허함을 채워간다. 흐르는 대로 흘러갈 수 있다면 더 좋을 우리들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삶의 사소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지치고 힘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보면 좋을 영화이다.



취업 후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이이즈카.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지만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공허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버텨간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오오토모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어색하지만 점차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관계의 물꼬가 트이며 편의점 사람들과도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어려웠던 일들도 적응이 되고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대견하다'라고 말하는 동료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 안에 파편처럼 박혀버린 자신의 힘듦과 공허를 공유하며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내향적이고 위축된 모습의 이이즈카는 타인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타인과 섞이는 것도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이 어색하게 보인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시간을 보내며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 영화 속의 관계를 바라보며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이 단어는 허무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의 미래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상황에 따라 한순간에 관계의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추억이라는 바구니에 최대한 많은 기억을 담아 그 힘으로 살아가고, 또 다른 인연에게 따뜻함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기억은 나에게 또 다른 영향으로 작용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과거에 그칠 인연이라도 그때 그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소하면서도 큰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난다.


시절인연이란 불교용어로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이다. 현대에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통하며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일련의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이즈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무언가를 고치는 것도 벅찬 모습이었다. 내면에서 시작되는 자신의 솔직함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회복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 전개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이이즈카에 대한 속사정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도, 별다른 결말이 주어지지 않아 뭔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소한 변화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특별하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이 사소한 움직임으로 공허한 아침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일 찾아올 아침이 두렵지 않고 햇살에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힘듦의 무게에 사사로움을 따지지 않고 소소한 따뜻함과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술을 마시며 친구와 나누는 대화, 고장 나버린 커튼을 고치는 일, 채소를 나누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채움'의 과정이다.



이이즈카는 어두컴컴하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다음 날 아침이 두려운 매일매일을 마주한다. 이 영화를 보면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어떤 사정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됐다. 왠지 모를 죄책감과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두려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다. 무력한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 중 첫 번째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과정이 처음부터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 중시되는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소한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쉬었다가 조금씩 움직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길. 그리고 내일은 아침이 두렵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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