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 리뷰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절망적인 것은 사회 전체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떤 일을 꿈꾸는 것도, 시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옥과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엔 유토피아 속으로는 디스토피아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탈출을 꿈꾸는 누군가를 조명한다. 모두가 꿈꾸지 못해서 유지되는 사회, 공포로 다수를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행복을 그곳에서는 누릴 수 있을지 영화 <탈주>를 통해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독 군복을 입으면 흥행하는 남자 배우 구교환과 2021년 청룡영화제에서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고백(?)했던 남자 배우 이제훈이 만났다.
휴전선 인근의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은 북을 벗어나 철책 너머의 남의 삶을 꿈꾼다. 매일 밤 나가 지뢰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도에 새기며 탈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전의 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지만 규남의 계획을 알아챈 병사 동혁이 탈주를 시도하고, 말리려던 규남까지 체포된다. 탈주병 수사를 위해 부대로 온 보위부 소좌 현상.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노력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사단장 직속보좌 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실적을 위한 일이겠지만 규남이 또다시 탈주를 계획할 수 있게 만들어준 셈이 됐다. 본격적으로 규남이 탈출을 시도하자 현상은 그를 쫓아 추격을 시작한다.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현재가 아닌 실패하더라도 모든 것을 해볼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몰아쳐도 끊임없이 질주하면서도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나아간다. 이 부분에서 지나치다고 느꼈던 부분이 물론 있었지만 확신한 자신의 목표가 있었기에 탈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확신에 찬 사람으로 타인을 위해 친절을 베풀지 않는 성격으로 표현했다면 영화의 전개 방식은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반면, 현상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규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의 현재를 망가뜨리는 것을 경계하고 또 자신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현상은 규남을 쫓는다. 모험가의 꿈을 꾼 건 규남이지만 희망을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현상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인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또 지금에 순응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영화 속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억압된 사회에서 사는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지난 꿈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꿈꾸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그의 처연함은 자기 확신이 가득한 인물을 보고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기존의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현상은 규남을 보내고 나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죽음보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을 두려워해라
2024년 7월 3일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탈주>는 처절한 몸짓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규남을 표현하는 이제훈, 그를 뒤쫓는 현상을 표현하는 구교환, 두 사람의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처음엔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이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자신이 넘지 못했던 한계선을 규남이 넘었기 때문에 불안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영화에서 이 부분을 좀 더 깊게 다뤘다면 더 그들의 이야기가 와닿았을 것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의문과 뭉뚱그려진 이야기, 그리고 불사조 주인공과 같은 허점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탈주의 이유가 그리 뚜렷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어 전반부와 후반부를 쓴 사람이 다른 걸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속도감 있는 전개와 불꽃 튀는 배우들의 연기는 <탈주>의 시간을 더욱 몰입감 있게 만든다. 특히. 그들의 끊임없는 질주는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 없어서 더욱 긴장하며 봤다.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갈망하는 자유와 행복은 어떤 것보다 소중하며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삶은 절망으로 가득 찰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