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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ul 26. 2024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자유로의 이룩.

영화 <새벽의 7인> 리뷰


1975년 루이스 길버트 감독의 <새벽의 7인>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을 그린 '유인원 작전' 이야기를 다룬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암살 작전에 투입된 체코 부대원들의 긴장감 넘치는 활약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왕관을 쓰면 1년 안에 죽는다



유인원 작전을 시작하다.


1941년의 영국에서는 체코 망명정부와 영국군 SOE은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을 선정하여 '유인원 작전'을 세운다. 새벽작전이자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이었다. 하이드리히는 히틀러 후계자이자 나치독일의 이인자로 평가되는 인물이었다. 냉혹하고 무자비한 그가 히틀러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체코의 생사가 그의 손에 달려있는 만큼 꼭 제거해야만 했다. 프라하에 착륙한 그들은 체코 내 협력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행하게 된다. 친위 경호가 삼엄해 예기치 못한 상황의 연속으로 위기를 맞지만 마침내 암살에 성공하게 된다. 습격 자체는 실패했지만 하이드리히가 부상을 입으며 감염되어 사망하게 된 것이다.


부상 이후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었으나 병원으로 옮길 때, 구급차가 아닌 지나가던 트럭을 이용했고 그 짐칸에 있던 오물이 상처에 감염을 일으켰다. 또한 하이드리히가 체코 의사를 믿지 못해 고집을 부리다가 독일인 의사가 늦게 도착해 치료가 늦어졌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도 "너무 늦습니다! 1분 1초라도 빨리 수술받으셔야 합니다! 파상풍에 합병증도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수술을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암살 성공, 보복 시작.


보복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작전에는 성공했지만 나치 독일은 사건이 발생한 리디체 마을을 불태우고 남성들은 학살하고 여성들은 수용소로 보내 보복했다. 지도에서 리디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암살자들을 죽이지 말고 잡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진 가운데, 경비가 삼엄해지게 된다. 가족들이 위험에 빠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던 특공대원 중 한 사람인 카렐 구르다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밀고하게 한다. 그렇게 배신으로 인해 성당 지하에 7명의 남자들이 지하에 고립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치열한 만큼 좁혀오는 독일군, 치열하게 저항하는 7명의 남자들의 결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숭고한 죽음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영화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국가의 문제를 지적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게 만든다. 이념으로 가를 수 없는 것들을 강조하며 개인의 삶에 집중한다. 영화는 전쟁과 독재의 참혹함,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들의 안타까운 운명을 담아내어 먹먹함을 더한다. 전쟁과 독재로 인해 잃을 수 있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자유' '평화' '희망'과 같은 것들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식민지배와 침략이 만연했던 시절에는 차별이 당연했기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영화는 하이드리히 암살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지만 쫓기는 이들의 절박한 상황과 주변의 이야기 또한 다루고 있기에 더욱 몰입감 있게 다가왔다. 특히 성당 지하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이들의 모습과 밖의 독일군, 군중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쉽게 얻어지지 않는 자유와 평화라는 것은 알았으나 누군가를 배신하는 그 시대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치 독일이 몰락한 사실을 보는 지금, 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이제는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작전을 시행하는 사람과 명령하는 사람의 거리감을 느낀 순간은 바로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사실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순간은 아름답다는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영원한 이별과 자유로의 이룩을 이루어내며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보복은 집단학살로서 자행되었고 마을은 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분명 그들의 탓이 아님에도 보복의 결과가 죄책감을 자극한다. 가족이 붕괴되고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그 상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암살은 성공을 했지만 개인의 삶에는 비극이 찾아오고 말았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가 맴돌아 다시 마음에 꽂혀 상처를 내고 마는 장면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서로를 경계할 수 없는 순간 속에서도 신뢰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냈던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꼭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된다.


영화가 끝나고 실존인물 기록에 대한 설명이 언급되는데, 마을 리디체는 전쟁이 끝나고 재건되었고, 배신자 카렐 쿠르다는 전쟁이 끝난 후 재판을 통해 1947년 처형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한국은 친일청산에 실패한 여파로 여전히 한국의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 잘못한 사람은 있지만 책임진 사람은 없는 지난 우리의 역사와 대조되는 모습에 더욱 막막함을 느낀다.



전쟁이 모든 악의 근원일세. 전쟁에서는 누구라도 혼자서 책임질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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