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볼버> 리뷰
전도연 배우와 오승욱 감독이 다시 만났다. 2015년 개봉한 <무뢰한> 이어 9년 만에 <리볼버>가 2024년 8월 7일에 개봉했다. 전도연의 섬세한 감정 연기와 오승욱 감독의 정교한 연출이 <리볼버>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복잡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케미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인물 간의 갈등과 복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수영이 출소한다. 누구도 반기지 않고 심지어는 관심도 없다. 약속의 대가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나왔지만, 아무런 대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억의 돈과 새 아파트를 한순간에 잃게 된 하수영은 한 남자를 추적하게 된다. 2년 사이에 임석용은 사라졌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리볼버'와 '삼단봉' 뿐이었다. 과연 하수영은 자신의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영화 속에는 정의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 한 인물들에게 희망을 부여하지 않는다. 하수영이 하는 복수도 다수 사람의 정의가 아닌 자신의 정의임을 드러낸다. 주인공의 행보를 응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몰입감 또한 떨어진다. 하수영이 비리 경찰이라는 설정은 관객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하수영이라는 인물은 비리 경찰이지만 그 영역에서도 소외된 인물이다.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적당히 처리해 온 것들은 자신을 먹칠하는 일이었고 이제는 이름조차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더러운 돈을 세탁하는 것,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스스럼없었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은 총알만큼 통쾌하게 처치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유일한 자존심을 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야기가 단순한 것에 비해 영화 속에서 풀어놓은 상황 설명이 명확하지 않고 인물들의 서사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영화에 나온 이상 그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해석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영화 속의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가장 문제점으로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의 서사까지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를 관객이 보고, 찾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 영화 자체의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돈이 만들어낸 권력의 정점에는 무서운 존재가 있을 것 같지만, 영화는 앤디와 그레이스와 찌질한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주제 의식을 담는 것은 좋았으나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서사가 맥거핀으로 끝나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으로 작용한다.
화려하지 않고 강렬하지도 않은 누아르지만 자신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무모함이 강렬한 반전으로 다가온다. 끊임없는 믿음과 배신의 반복은 끝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긴장감을 유발한다. 하수영이 움직이면서 주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특히 임지연이 연기하는 정윤선이라는 캐릭터는 조력자로서 영화의 활력을 더한다. 영화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역할은 아니나 수영에게 의외로(?) 큰 도움이 된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앤디는 존재감이 아주 아쉽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대상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잽도 안된다. 찌질한 주제에 후반 반전의 사정이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유발하는 것도 의외의 반전. 지창욱의 재발견이다. 특별 출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저 한 장면으로 지나가지 않고 이야기 전개에 큰 역할을 하며 중심부가 되어주는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냉혹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분위기는 정말 좋았는데, 이야기의 전개나 통쾌하지 않고 밋밋하게 느껴지는 복수극은 정말 아쉬웠다. 별거 없는 이야기였지만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음악의 웅장함과 인물의 처연함에 생기를 잃고 만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확실하나 막상 이야기를 까보니 텅 빈 알맹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허무함이 부각된다. 총성 한 방으로 자신의 복수를 끝내지만 통쾌함은 없다.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구석의 찝찝함을 남기며 끝내 이 영화가 불발탄임을 증명한다. 다시 되찾기 위한 몸부림은 무를 향한 공허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허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