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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Sep 27. 2024

사랑의 방식을 정의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시사회 리뷰


이언희 감독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중 <재희>를 원작으로 하며, 2024년 10월 1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김고은과 노상현의 열연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미스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을 무한 재생하게 된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한 영화이다.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재희와 타인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은 흥수가 만난다.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 같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한 채, 저마다의 인생을 즐긴다.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던 그들은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둘도 없는 사이로 발전해 나간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동거를 하게 된 두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는데.. 과연 그들의 청춘 라이프는 '무사히' 지켜질 수 있을까.



자유롭고 진취적인 재희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을 열심히 즐긴다. 노는 것에도 진심, 학업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도 시선에 흔들릴 때가 있다. '순결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편협한 사회의 시선에 의해 무너지곤 한다. 한 가지 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고, 또 판단되고는 했다. 자신조차 정의할 수 없는 '나'를 왜 사람들은 마음대로 결정하는 걸까.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재희는 그것은 자신이 아니며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에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하고 싶은 건 다해볼 거야"라는 말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랑도, 청춘도.


흥수는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극도로 경계한다. 재희와의 첫 만남이 좋지 않았던 이유도 오해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재희는 그의 비밀을 지켜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흥수를 바라봐준다. 그날부터 두 사람의 동행은 시작된다. 세상의 편견이 두려웠던 흥수는 재희 앞에서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었다. 재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진정한 우정을 쌓아간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의해 강해지고, 세상이 시선이 그래도 두렵지 않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성적지향이 병으로 치부되고, 사랑에도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던 흥수는 재희와 함께하며 조금씩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때론, 어떤 문제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각자의 이상형은 달랐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은 세상의 모든 편견을 넘어선다. 재희는 흥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그런 사람이다.



영화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는 말,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와 같은 고정관념들을 차근차근 부수어 나간다. 그러면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며, 연애와 같은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관객에게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마주하게 만들고, 사랑이란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정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친구 간의 우정, 가족 간의 사랑, 그리고 서로를 지지하는 동료애까지, 영화는 사랑의 정의를 넓히고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소중한 관계들을 조명한다. 이러한 사랑들은 강요하지 않는 만큼,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로 여기며 간편하게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람은 한 가지의 모습만으로 판단하기엔 정말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고 그 이면에는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가 감정이 얽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면적인 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평가 내리곤 한다. 심지어는 그리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를 권리인 것처럼 큰 목소리를 내고 앞장설 뿐만 아니라 동조하기까지 한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나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타인을 판단하고 평가할 자격은 없다. 영화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부조리가 당연해지지 않는 그때 비로소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놀라웠다. 한국 사회를 잘 녹여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으로 다루어내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사실 처음 영화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고 원작과는 다른 전개로 나아가려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잘 된' 각색을 통해 좋은 작품이 완성되었다. 20살부터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며 그들의 특별한 우정을 아름답게 잘 표현했다. 소수의 목소리로 치부되던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영화에서 잘 녹아들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감정선과 스토리 전개에 잘 엮어내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주인공들 간의 끈끈한 우정을 통해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으며 이 부분이 영화를 보다 더 진정성 있게 만들어준다.


영화는 원작의 공백을 촘촘히 채우면서도 감정표현을 매우 세심하게 해낸다. 소설의 잔가지를 잘 쳐내어 서사를 깔끔하게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재희>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답게 '재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재해석이 매우 재미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원작 소설을 세심하게 읽고 재희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강해보이던 재희가 때론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재희라는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김고은 배우를 통해 등장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훌륭하게 잘 전달하여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흥수'의 내면과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보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원작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다만, 규호라는 캐릭터가 없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원작 소설에서 그들의 감정선과 관계에 집중해서 놓친 부분을 영화에서는 잘 보완해 주었다.
동명의 8부작 드라마는 2024년 10월 21일 티빙에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르게 연작소설집의 수록작 전부를 대상으로 하여, 다양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어떤 내용과 캐릭터로 구성될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가 어떻게 서로 연결될지도 주목할 만하다.


원작 소설


https://mindirrle.tistory.com/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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