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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Oct 01. 2024

심해진 망상만큼 피폐해진 조커에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영화 <조커: 폴리 아 되> 리뷰


2024년 10월 1일, 광기의 세계가 다시 한번 스크린을 뒤덮는다. 2019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조커>의 후속작, <조커: 폴리 아 되>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두 배의 광기'라는 뜻의 부제 '폴리 아 되'처럼, 아서 플렉과 할리 퀸의 광기 어린 만남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2년 전, 연쇄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뒤흔든 아서 플렉은 고담시의 아이콘인 '조커'가 되었다. 아캄 수용소에 갇혀 최종 재판을 앞둔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용소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리 퀸젤은 아서를 자극했고 아서 속에 감춰두었던 조커의 본능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희망처럼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는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일으킨다. 심지어는 관객에게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아서 플렉이 원하는 환상인 만큼 영화 속의 아서 플렉은 조커의 모습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시위대의 상징, 인격 장애로 인해 나타난 조커가 아니다. 이따금 무대 위의 화려한 자신, 단지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신을 꿈꿨을 뿐이지만 나약한 아서 플렉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쌓아 올릴 산에 펼쳐질 행복을 꿈꾸며 끊임없이 올라간 그 계단 위에 광기가 아닌 광대 분장을 한 초라한 아서 플렉만이 남아있었다.



2편은 1편을 대비하듯 아서 플렉의 광기를 가짜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 화려한 가면을 통해 광기를 극대화했지만 끝내 그 가면을 빼앗는다. 불현듯 찾아온 사랑과 기대와 관심도 모두 허상인 것처럼 끝내 그를 홀로 내버려 둔다. 갈라져 버린 사랑보다 더 비극적인 아서 플렉의 아픔은 또다시 이용된다. 머레이를 선망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조커의 광기를 선망했던 것뿐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에 한없이 슬프게 만든다. 그를 아무리 포장해도 살인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더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지나치게 현실감 있었다. 이 정도 사랑을 경험하게 만들어주었으면 됐으리라 말하는 듯, 아서 플렉에게 잠시나마 찾아왔던 행복을 너무나도 잔혹하게 빼앗아간다.


환상에서 벗어나며 그는 일반적인 궤도로 들어선다. 그러면서 아서 플렉은 전작의 '조커'의 모습처럼 방아쇠를 당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니고 있는 병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다. 감정에 무뎌지고 자신의 본성을 숨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과는 다르게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도무지 사회는 그를 가만두려 하지 않는다. 엄마에 의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던 과거와는 다르게 리와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 현재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런 탓일까. 너무나도 짧았던 행복에 다시 곤두박질치면서 그는 일어서는 힘을 잃어버린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앞에서 주저앉은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정말 그는 끝내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하는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조커와 자신이 별개라고 생각했던 아서 플렉은 환상과 현실 속에서 온전해지고 싶었지만 그 모든 것은 망상이라는 결과물로 비친다. 조커라는 모습으로 투영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중심이 된다. 그렇게 아서는 리를 만나며 ‘망상’이 아닌 ‘사랑’을 시작한다. 아서는 리로 인해 조커로서 자신의 모습이 진짜라고 착각했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를 사랑의 비극은 산을 쌓아 올리기로 했던 행복만큼이나 쉽게 흩어져버렸다. 대중에 의해 소비되고 가십거리로 치부되는 조커는 끝내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전의 삶이나 현재의 삶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을 뼛속 깊이 느껴야만 했다. 환상의 끝은 소멸이라는 말처럼 이 영화의 결말 또한 그랬다. 다만, 전작에서 화장실에서 춤을 춘다거나, 계단을 내려오면서 춤을 추는 장면을 통해 비극을 표현했다면, 할리 퀸을 만나며 더욱 화려해지며 대비되는 비극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영화 <조커: 폴리 아 되>는 1편과 확실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서 플렉이 전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시도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그의 내면에 집중하며 현실과 환상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그 과정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조커> 1편이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은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고통과 광기가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심지어는 소외되는 것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편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가 희석되고, 아서 플렉 개인의 내면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고담시가 조커를 가십거리로 소비하듯, 이 영화도 조커와 아서 플렉을 소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의 심리와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또한, 음악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흥미를 잃게 만든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조커와 할리 퀸이 등장하며 두 배의 광기가 두드러지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강렬함이 예상보다 약했다. 전반부에서 표현된 미친 사랑의 에너지가 후반부로 갈수록 평범한 연애담으로 흐르고, ‘사랑’이라는 특별함마저 희미해진다. 더불어 리의 마음은 진짜일까?라는 의문이 피어오르며 불현듯 아서의 비극을 예상하게 만든다.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듯했던 사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로 인해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초라함은 더 부각된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전작의 광기를 탈피하고 아서 플렉의 내면에 집중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지만, 사랑과 환상,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으며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한 아쉬움은 영화 속의 사람들처럼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커 1 리뷰

https://brunch.co.kr/@mindirrle/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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