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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짊어져야 할 책임,저널리즘과 보도 윤리의 딜레마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리뷰

by 민드레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테러사건인 뮌헨 올림픽 참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는 일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벌어진 인질극인데,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이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했으나 전원 살해된 사건이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그때 당시의 상황을 생중계한 ABC 방송국 스포츠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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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당시 독일은 차별과 폭력으로 그득했던 나치에서 벗어난 독일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세계 평화를 올림픽의 주제로 내세운 뮌헨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다. 올림픽 생중계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뮌헨에 파견되어 선수촌 바로 옆에 자체 스튜디오를 세우고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중계방송 보도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어느 날, 선수촌에서 울린 총성이 들린다. 알고 보니 무장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인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하여 11명을 인질로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단독 생중계하기 위해 취재에 나서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긴박한 현장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 또한 ABC의 생중계를 볼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초기 인질구출을 실패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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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ABC 방송국은 방송을 멈출 수 없었다. 높은 시청률, 특종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자의 본능이 모든 것을 제쳐두게 만들었다. 끈질긴 협상 끝에 인질을 끌고 공항까지 간 테러단체는 독일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항으로 따라간 취재진은 전원 구출이란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에 안도하는 가운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하기 전 망설였지만 특종을 놓칠 수는 없었기에 규정을 어기고 보도한다. 하지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전원 사망 소식을 다시 전하게 된다.


이들의 위험한 특종 생중계는 방송국의 역사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지었지만 테러는 최악의 참사로 남았다. 무장 제복 경찰이나 보안 요원을 배치하지 않는 등 행사의 보안이 매우 허술했지만 그때 당시했던 생방송은 테러범들에게 대테러작전을 그대로 노출하여 진압에 실패했다. 참사를 생중계하고 얻게 된 타이틀과는 별개로 전원 사망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죄책감에 무게를 더한다. 우리가 다하는 최선이 때론 가장 바라지 않았을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관제실 안에 있는 이들의 윤리적 가치 판단이 흔들리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또 다른 비극이 있다. 바로 201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다. 당시 생중계로 전 국민은 침몰하는 배를 지켜봤다. 이 참사에서 언론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속보 경쟁과 조회수 올리기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났고, 그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것이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언론은 현장 취재보다 단순한 관제센터 발표를 받아쓰기 급급했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무책임하게 퍼뜨렸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윤리적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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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그 참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참사를 생중계로 내보내는 방송국 내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대의 카메라, 앵커, 현장 기자들을 지휘하고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뉴스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긴박하게 이루어지는 만큼 각자의 가치관과는 다른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전달과 시청률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보도국과의 타 방송사와 위성 사용을 두고 협상하는 모습, 속보 경쟁 속에서 무너지는 윤리적 가치, 참사를 목격하면서도 다음 특종을 준비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을 담아낸다. 각자의 몫으로 남아버린 죄책감은 성공했지만 동시에 실패한 이들의 뒷모습에 찰싹 달라붙어 그들의 무거운 눈을 더욱 무겁게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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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독일인 통역사 마리안네는 독일어를 영어로 통역하기 위해 고용된 직원이다. 초반에는 단순한 분쟁을 해결하는 정도의 장면만 등장하여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질극이 벌어지며 사태가 심각해지자, 마리안네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현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한 직원이 갑자기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라디오 뉴스를 듣지 못하게 되고 결국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된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 직원은 미안함에 마리안네에게 커피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마리안네는 독일인으로서 과거 나치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독일인이라는 편견에 갇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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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만큼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그 현장감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참사에 대한 구체적인 장면을 담고 있지 않았지만 화면에서 전달하는 그 참담함이 장면너머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은 방송국 내부와 화면 너머로 전달되는 그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게끔 연출하는데, 생방송의 결과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며 긴장감이 확 풀리는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 사이에서 술렁이는 소리는 있었으나 중심을 잡고 담담하게 보도를 이어가는 모습에 프로페셔널함을 느꼈다. 담담하게 이어가면서도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기억에 남았다.


기자의 보도, 직업윤리에 초점을 맞춰 고뇌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사에 대해서 다루거나 그 고뇌에 대해 더 깊숙하게 파고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언론은 준비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옳은 가치판단을 바탕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해 시선을 TV에 머물게 하고 사실 전달을 위해 현장을 지키며 충격에도 다음 특종을 준비해야 하는 어떤 책임감에 대해서도,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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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은 올림픽 참사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과정을 다뤘다면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ABC 방송국이 뮌헨 올림픽 참사를 생중계로 담아내는 기자들의 윤리적 고민과 보도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속된 비극을 막지 못하는 세상의 어리석음과 자극적인 화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길 내심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는 매우 끔찍했다. 피의 역사를 반복해 온 세상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망각할 정도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테러의 위협은 꺼지지 않아 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우리는 때때로 최선을 다했다고 믿지만, 그 결과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보도의 윤리와 인간의 판단 오류, 그리고 비극이 반복되는 세상의 어리석음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자극적인 화제를 좇는 미디어와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까지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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