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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본질은 삶을 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by 민드레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전쟁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방관 혹은 침묵 속에서 살아가곤 한다. 마치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 모든 일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브루스탈리스트>는 2025년 2월 12일 개봉한 영화이다. 희망이라는 환상에 놓인 풍파 속에서 삶을 견뎌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어 인간 존재와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양식을 엮어 삶의 본질을 고찰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상태와 사회적 압박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니 이를 중점적으로 두고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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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헝가리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 그는 고국을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한다. 아직 미국으로 건너오지 못한 와이프 에르제베트와 조카 조피아를 기다리며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먼저 이민 온 아틸라의 집에 머물게 된다. 라슬로와 아틸라는 대부호 해리슨 리 밴뷰런의 아들 해리로부터 아버지의 서재를 재건축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서재를 재건축하지만 해리슨은 라슬로와 아틸라를 쫓아냈고, 라슬로와 오드리 사이를 불편해하던 아틸라는 라슬로를 쫓아낸다. 한편, 밴뷰런의 서재가 건축계의 극찬을 받자 라슬로를 찾아와 그를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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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방식으로 건물을 지으며 건축계의 극찬을 받았지만 그는 이방인이라는 꼬리표에 가로막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혔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방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의 감정의 고동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그의 고통과 좌절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지만 그는 비교적 간단한 방식으로 약을 이용했고 그럴수록 더욱 망가져간다. 사촌이었지만 결국 다른 미국인처럼 그를 이용했던 것처럼 그의 순수함을 착취하는데 이용한다. 오로지 자유로운 것은 십자가 아래 놓인 자신의 마음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찰나의 자유는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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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진실과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 곳처럼 쉽게 속이고 말을 바꾸며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당연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는 있어야 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그 거대한 자유는 사실 허황된 것과도 같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그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상하듯 처음부터 뒤집어진 채로 등장한다. 빛을 통해 비치는 십자가처럼 의미와 상징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해도 그저 이방인에 불과했다. 실제 현재의 미국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태도로 그 이민자를 배척하고 편견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고 아메리칸드림은 참혹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고고하지만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남자의 아메리칸드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황된 유토피아로 막을 내렸다. 결국 자유를 표방하는 곳에서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자유는 가루처럼, 빛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후의 삶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도 아마 낙원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남는다.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숙명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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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은 그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을 통해 전해졌다. 그가 틈만 나면 피우는 담배, 마시는 술, 심지어는 마약까지. 그런 것들에 중독되지 않고는 이 삶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가 건축하는 고고하고 단단한 건물처럼 그는 단단했으나 동시에 나약했다.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재회의 기쁨은 잠시였고 삶은 현실이었으며 고통은 속박이었다. 과거의 일들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에게 달라붙어 그의 내면을 조금씩 갉아먹었던 것이다. 해리슨이 그를 망가뜨리기 위해 행했던 일들 중에 라슬로가 보지 못한 잠재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물의 정교함과 내면의 미약함이 거칠게 부딪혀 마찰음을 낸다. 삶과 고통이 맞닿아 빛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지만 그 빛은 현실 속 그림장에 가려져 사라지기도 한다. 구원과 나락을 오가는 시련 속에서 희망은 언제나 손에 닿을 듯 말 듯 멀어져 간다. 무수한 고난 속에서 피어난 자유의 열망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듯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살아남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나?라는 질문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간다. 그의 족적이 남긴 과거의 흔적은 한 시대를 아우르는 깊은 의미를 지녔다는 것은 틀림없다. 고통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하나의 웅장한 건축물처럼 견고하게 자신의 삶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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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즘(brutalism)은 20세기 초의 모더니즘 건축의 뒤를 이어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융성했던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이름은 르 코르뷔지에가 사용한 프랑스어 용어인 béton brut(가공되지 않은 콘크리트)에서 유래했으며 거칠고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솔직함을 담은 건축 스타일이다. 가공되지 않은 재료들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로 콘크리트가 노출되어 요새와 같아 보이는 건축물이 대표적이다. 전쟁이 끝난 후 빠른 재건이 필요했기에 실용주의적인 브루탈리즘은 적합했다. 하지만 보기가 흉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사라졌다. 아래의 사이트에서 브루탈리즘과 관련된 사진들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해 보시길!


https://www.architecture.com/explore-architecture/brutalism?srsltid=AfmBOoooWxsnpVQVP9mYNdV-tO9SflYMBxEo9GCq_MC3SOhRBdkAvf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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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이민자들이 겪는 경제적·사회적 불안정, 언어적 장벽, 문화적 소외감 등을 엿볼 수 있었다. <브루탈리스트>에서는 이민자 차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차별과 배제는 라즐로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영화 속에서 여성과 유색인종들이 직면한 현실과도 맞물린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라즐로 토스라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 잘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뤘다면 이 영화가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미국 사회가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을 배척하고 기득권층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사회문제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용하며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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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즘>은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가운데, 3월 3일 예정되어 있는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강력 수상 후보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 브루탈리스트의 AI 활용 논란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와 펄리시티 존스의 헝가리어 발음을 인공지능(AI)으로 보정했다는 점과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건축 도면을 만드는데 생성형 AI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커졌다. 특히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여 영화에서의 AI 사용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2023년 생성 AI 논쟁으로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가 동반 파업을 했던 논란이 있었던 것만큼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I의 사용을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과 연기의 일부인 발음을 보정하는 부분이 과연 배우의 순수한 연기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025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중 컴플리트 언노운, 브루스탈리스트를 포함한 여러 영화에서도 AI가 사용된 사실이 밝혀졌다. 아카데미는 오스카 출품 요건을 변경해, 2026년부터 아카데미 후보작에 AI 사용 여부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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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영화는 시대를 담은 픽션이다. 장 루이 코헨의 architecture in uniform의 책을 읽다가 전쟁 후 복원 사업의 인간적 의의와 당시 건축과의 내적 동질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실화처럼 보일만큼 시대의 현장감이 담긴 노력이 돋보인다. 시대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인 고통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담아낸 영화이다. 짧은 시간 내에 도파민을 자극하는 쇼츠, 릴스가 성행하는 이 시대에서 무려 215분이라는 상영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길이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도 영화의 의미와 목적에 충분히 감화될 수 있는 자신감이 돋보일 만큼 압도적인 몰입감에 빠져드는 영화였다. 그만큼 철저하고 딱 떨어지는 정교함을 가졌다. 중간에 인터미션 15분 또한 주어지니 부담이 덜어진다. 시대를 역행한다고 볼 수 없는 브래디 코디감독의 시선은 이 건물이 완성되는 것처럼, 영화 속의 사람들의 삶을 완성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 속에서의 건축물은 주인공인 라즐로 토스와 한 몸이 되어 내면의 고통과 변화를 상직적으로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의 냉혹함과 토스의 심리적 고립감이 맞물려 어떻게 역사의 한켠으로 사라졌는지를 보여줬다. 또, 전쟁을 견뎌낸 그의 건축물처럼 오래오래 기억하게 남을 영화가 존재하고, 존재하는 이유를 영화로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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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는 브레이디 코벳 감독이 연출했으며 애드리언 브로디, 펄리시티 존스, 가이 피어스 주연의 영화로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을 수상하였으며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어떤 결과를 낼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시대를 담았고 그 속에 역사를 녹여내었으며 사람들의 삶을 보여줬다. 이 영화는 건축 영화의 새로운 발돋움이 될 것이며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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