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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소리 좀 낮춰주실래요? 목소리가 너무 안 들려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리뷰

by 민드레


원작 소설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았던 <전지적 독자 시점>이 2025년 7월 23일 개봉했다. 작품 내외로 여러 말이 많은 가운데, 나 역시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수많은 생각을 안고 극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맴도는 말은 “저기, 소리 좀 낮춰주실래요? 목소리가 너무 안 들려요..”였다. 영화 자체의 음향 밸런스의 문제은 물론 CG, 액션, 대사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들려야 할 메시지가 너무 흐릿하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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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평범한 회사원 김독자는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온 연재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유일한 독자다. 10년간 연재된 소설 속 이야기가 끝을 맺자 그는 작가에게 불만 섞인 메일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작가로부터 직접 결말을 지어보라는 답장을 받고, 갑자기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펼쳐진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김독자는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과 함께 세상을 구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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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와 소설 속의 사람들


김독자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현재는 평범한 계약직으로 오늘 계약이 종료되었다. 시스템과 자본의 논리에 짓눌린 그에게 소설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강자가 될 확률은 희미했고, 이 세상의 규칙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소설이 현실이 되면서, 그는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닌 선택의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되었다.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10여 년간 반복해 읽어온 열혈 독자답게,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의 선택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려 한다.


하지만 김독자가 개입한 시점부터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에게는 유상아, 이현성, 정희원이라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다시 써 내려가며 김독자는 더 이상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공동 저자가 된다. 동료들과의 협력은 소수의 희생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만들고 그들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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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의 차이점

<전지적 독자 시점>은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이미 웹툰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나처럼 원작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도 이 영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 관람 이후 원작 웹툰을 찾아보며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게 되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영화는 원작의 설정과 감정선을 상당 부분 축소하거나 변형했다. 물론 영화화가 쉽지 않은 복잡한 세계관과 철학을 품고 있는 작품인 만큼 어느 정도의 축약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일수록 더욱 섬세한 접근과 원작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이번 영화는 그 부분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원작의 핵심 장치들이 빠진 자리는 빈틈이 가득했고 결과적으로는 납작한 2시간짜리 블록버스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요 인물들의 매력 축소

영화 속에서 김독자는 어정쩡하게 '착한 사람'으로 묘사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비현실적일 만큼 무르게 그려져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작에서 보여주던 시원하고 이성적인 면모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똑똑한 생존 전략가로서의 매력은 거의 사라졌다. 원작에서 다른 주인공들과의 협력이나 관계성이 돋보였던 기존의 모습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원작 속 유중혁은 수십 번의 회귀를 반복하며 인간성을 조금씩 소진해 온 인물이다. 그는 무심하고 냉철하며 때로는 비정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효율만을 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납득 가능한 서사와 입체감이 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회귀를 겪으며 닳아버린 인격’을 그저 '이기주의'로 치부되고 만다.


세계관 축소의 문제

김독자는 멸살법 작가의 유일한 독자로, 멸살법 완결 날 작가는 독자에게 멸살법 에필로그 유료화 소식을 알리고 텍본을 선물한다. 그렇게 전지적 독자 시점은 독자만이 아는 이야기 핵심축이다. 이 세계의 '유료 서비스'는 인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편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며 동시에 성좌들의 재미를 위해 펼쳐진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원작에서는 유일한 독자인 독자를 위해 중요한 스킬을 부여하고 그 힘으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주도한다. 원작에서는 '전지적 독자시점' 스킬, 등장인물 일람, 제4의 벽, 독해력 등을 통해 유일한 독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특수성이 삭제되어 김독자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으로 축소된다.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통제력도 약화되어 작품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가 하나 더 사라진다. 배후성의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에서는 ‘성좌의 관심’이라는 설정을 이용한 전략으로 사용되었지만 영화는 그 부분을 대가 지불이라는 애매한 설정으로 바뀌며 서사의 설득력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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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은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스케일의 판타지 세계관과 게임적 구성을 시도한 작품이다. CG와 연출, 공간 구성에서 일정한 박진감이 느껴지며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고통, 체념, 선택과 트라우마는 그 스케일에 비해 지나치게 희미하게 그려졌다. 김독자의 내면 서사, 유지혁의 체념과 단절, 세계의 붕괴가 주는 무게감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이 ‘첫 번째 영화화’라는 점에서 세계관과 인물 설정에 대한 더 친절한 설명과 감정선의 구축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영화의 단점은 치명적이다. 원작이라는 강력한 기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납작하게 축소하거나 왜곡하면서 원작의 팬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이질감을 준다. 배경음이 과하게 커서 중요한 대사는 묻히고, CG는 B급 영화처럼 어설프다. 대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연출은 다소 과장된 연출이었다. 특히 이지혜역을 맡은 지수의 연기는 극의 감정을 끌어올리기엔 다소 부족해 보였다. 또한 흥행 부진의 이유를 원작 팬에게 돌리는 듯한 인터뷰가 큰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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